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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준 칼럼] 부(富)의 대전환을 주도하는 든든한 후원군! 양자물리학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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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그간 ‘공간지배’라는 인류의 공통적 가치사슬에 충실히 진화되어 왔다. ‘공간지배’는 집단 협업을 최우선으로 하는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전략이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권리이기도 했다.

 

‘공간지배’에 대한 열망은 영토 확장으로 이어져 이후 국가가 설립되고,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 영토의 유지와 확대를 위해서 동종 간의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는 ‘전통’과 ‘질서’를 공유하면서 ‘사회’라는 공간을 유지하는데 힘써왔다. 

 

▲  부(富)의 가치이동  ©누림경제발전연구소

 

국가와 사회의 ‘공간지배’에 대한 열망은 개인에게도 확대된다. 집과 토지를 넘어 부의 승계를 통해 자신들이 갖게 된 공간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함으로써 노동력을 통한 가세를 넓히고, 경영경제학에 ‘공간경쟁’이라는 개념을 넣음으로써 ‘공간지배’를 정당화시킨다.

 

어찌 보면 역사시대 이후 인간의 모든 제도와 경제, 사회철학적 이론들이 ‘공간지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지배’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생각(text)이나 철학에도 반영된다. 자신의 생각을 공간좌표(x, y, z의 3차원 좌표 값)로 정의하고, 이 가치를 타자(他者)에게 설득하고,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모두 ‘공간지배’의 습성이다.

 

그런데 역사시대가 저물기 시작하는 20세기 말부터 사회적 화합과 안정을 위한 ‘공간지배’에 대한 인류의 갈망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 세계대전, 사회계층의 양극화, 탐욕적 금융의 탄생 등으로 인해 오히려 공간 내부의 갈등이 조장되어 불안전한 국가와 사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계층 간 갈등, 빈익빈 부익부라는 양극화는 오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해 오히려 ‘공간지배’의 목적인 화합과 안정을 위협하게 된다. 특히 공리주의와 사회 전통을 통한 국가와 사회의 ‘공간지배’ 요구가 독재로 변질되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면서 ‘공간지배’에 대한 반항과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회문화적으로는 반달리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하여 사회문화적 기득권에 대한 반항과 저항을 시작한다.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 등은 대표적인 ‘공간지배’ 가치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여기에 1900년대 중간 즈음에 주목할 만한 ‘공간지배’에 대한 저항이 과학계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양자물리학’이다.

 

양자물리학은 공간좌표의 고정된 절대 값(x, y, z)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확정적이고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찰자의 위치와 관점, 역량에 따라 측정되는 좌표 값이 다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곧 그간 인류사회가 절대선(善)으로 알고 있었던 다양한 가치체계가 틀릴 수 있음과 연결되어 사회학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양자물리학은 그간 인류가 옳고(right), 맞고(true), 좋은(good)것으로 믿고 있었던 다양한 진실들이 틀릴 수 있으며, 이 틀린 진실을 위해 인류가 얼마나 위험하고, 허무하고, 잔악한 행동을 자연과 동종의 인간들에게 했었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양자물리학은 전쟁과 인종청소, 대량학살, 마녀사냥, 노예제도와 계급사회, 경쟁과 양극화 등이 모두 ‘공간지배’를 위한 가치이자 도구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수천 년간 인류가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가치’들마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양자물리학’이 과학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던 셈이다.

 

양자물리학의 사회학적 해석은 명료하다.

 

첫째, 타자가 자신의 기준으로 측정한 공간좌표 즉, 타자의 생각(text)에 대한 변동성과 다양성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여자만이 치마를 입는다’라는 사회적 관념(觀念)에서 ‘누구라도 치마를 입을 수도 있다’로 사회적 관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내가 바라보는 혹은 진실이라고 배우고, 알고 있던 공간좌표(관념)와 타자의 공간좌표(관념)가 모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변동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3차원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각자 주장을 내세운다면 국가와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부자도, 다수(多數)도 심지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도 서로 동등한 사회적 합의의 대상들일뿐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합의에 의해 약속된 공동선(Social Impact)을 실천하기 위한 사회적 계약과 이에 따른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부자라서, 강자라서, 약자라서, 소수자라서, 불쌍해서 책임을 지우지 않는 ‘착한 아이 신드롬’에 빠지는 국가와 사회가 곧 21세기 후진 사회다.

 

결국 20세기 말부터 ‘공간지배’의 억압과 통제를 벗어나려 반항과 저항으로 몸부림쳤던 인류의 자생적 노력들이 양자물리학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통하여 체계적인 실천방향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관념(사상, 생각, text)이 타자의 관념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 텍스트 간 거리(시간 or 속도)를 줄임으로써 상호 합의되는 공동선(소셜임팩트)을 실천하기 위한 조직이 구성되고, 이를 위한 활동가들의 노력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탈중앙화 철학을 앞세운 ‘블록체인의 DAO’나 ‘ESG경영’은 21세기 들어 ‘탈(脫)공간지배’를 공식적으로 선포한 대표적인 ‘철학’이자 ‘사회모델’이다.

 

지난 2천 년간 인류가 추구하는 부(富)의 원천이 유니버스라는 공간을 확보하고, 유지하고, 확대하는데서 나왔다면, 21세기 이후 부(富)는 ‘탈(脫)공간지배’라는 새로운 가치로부터 나올 것이다. 앞으로 메타버스, ESG, 블록체인, 소셜임팩트, 대중주도(crowd-based) 사회, 프로토콜 경제, 임팩트 금융 등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시대!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개념의 가치체계들을 우리가 배우고,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내고, 후손들에게 물려줌에 있어 혼란과 오류를 줄이는데 ‘양자물리학’ 은 풍부한 과학적 근거와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든든한 후원군이라 하겠다. 

 

박항준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대표이사

누림경제발전연구원 원장

(사)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이사

(사)우리경제교류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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