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회원동정

검색

검색

277
번호 내용 작성자 등록일
277
썸네일
(aT 김춘진 사장) 인터뷰 “식량안보 강화와 농어민 소득증진에 총력". 취임 100여 일…'식량 전략 비축기지’와 ‘주민참여형 스마트팜’ 중점 추진   “식량안보 강화와 농어민 소득증진을 위한 ‘식량 전략 비축기지’와 ‘주민참여형 스마트팜’ 등 신규사업 추진을 위해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부부처 장관 등 대정부 관계자, KIST‧대학교수 등 전문가, 새만금개발공사 등 유관기관과 끊임없이 소통해 왔다. 그 결과 식량 전략 비축기지 건설 검토를 위한 예산이 2022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되는 성과를 거뒀다.”   ▲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 이대웅 기자 지난 3월 15일 취임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김춘진 사장의 취임 이후 100여 일간 행보에 대한 설명이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농수산식품산업의 현장을 직접 찾아 소통하고 현안을 챙기면서 제도개선 및 신규사업을 구상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aT,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와 삶의 질 향상을 미션으로 하는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국민들이 많아 김춘진 사장에게 기관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김 사장은 “1967년 설립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준정부기관으로서, 농수산식품 산업육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와 삶의 질 향상을 미션으로 하는 공공기관”이라며 “국민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농산물의 수급안정부터 △유통구조 개선, △수출진흥, △식품산업 육성까지 농수산식품 산업에서 민간이 하기 어려운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T본사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인 전남 나주에 위치해 있다. 4본부, 1소, 16처ㆍ실, 4사업소(급식지원처, e커머스사업처, 화훼사업센터, 농식품유통교육원)와 11개 국내지역본부, 18개 해외지사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차원에서 식량확보 ‧ 상시 비축 ‧ 관리하는 ‘식량 전략 비축기지’ 조성 필요 비축기지 조성지역으로는 새만금 간척지가 최적지…배후 기반 조성·해상운송 용이   김 사장은 기후변화 및 코로나19 등으로 자국 우선주의  강화, 곡물 수출 통제로 인한 가격 급등세 등 커지고 있는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식량 전략 비축기지’ 조성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 수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 식량확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차원에서 식량확보 ‧ 상시 비축 ‧ 관리하는 ‘식량 전략 비축기지’를 조성해 식량의 안정적 공급기반을 마련하고 식량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축기지를 이용한 제분·착유시설 등 식품 가공공장유치를 통해 최대의 식량 ‧ 식품 종합가공 콤비나트를 구축코자 한다."    김 사장은 “비축기지 조성지역으로는 새만금 간척지가 최적지”라면서 “쌀, 밀, 콩 주산지이며 농산물 저장·가공 수요도 많고, 식품제조업(클러스터), 유관기관 인접 등 배후 기반을 갖췄고, 중·일·북한 등 해상운송이 용이하며,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의 접근이 가능한 항만 건설을 통해 동북아 식량 허브로 육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략 비축기지와 친환경·신재생·청정에너지 결합모델은 대규모 에너지 자급자족 개발 사례로서 타 산업으로 파급효과가 기대되며, 이를 통해 국가 식량안보를 확립하여 식량안보와 수급  안정에 따른 국민의 관심과 신뢰도를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잘사는 농어촌, 돌아오는 농어촌 위한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사업    김 사장은 ‘잘사는 농어촌, 돌아오는 농어촌’을 만들어야 한다며 중점 추진중인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사업을 소개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온 농촌의 고령인구와 도시의 청장년 인구가 함께 상생하며 농촌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창출할 수 있는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 사업을 추진해 농촌의 고령화 현상과 도시 청장년층의 취업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김 사장은 “‘주민참여 공유경제형 스마트팜’은 유관기관 협업으로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해 마을기업이 운영하고 농촌 고령층은 노동력 제공, 청장년층은 스마트팜을 운용하는 사업”이라며 “스마트팜 운영으로 창출되는 수익 일부를 기본소득처럼 마을 전체 농가와 균등하게 배분해 농촌복지를 현실화시킴으로써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T는 스마트팜을 통해 재배된 농산물의 판로를 책임지고 확보하여 안정적 농가 소득 창출에 이바지함으로써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지방 인구 유입 등에 기여할 수 있는 농촌의 신사업모델로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 이대웅 기자   ‘농식품 빅데이터 거래소(KADX)’ 출범…188종 데이터 개방   aT는 작년 9월, 한국판 뉴딜 과제인 데이터 댐 구축 사업 공모에서 농식품분야 최종사업자로 선정돼 농식품산업 데이터 유통·거래 생태계 구축사업인 ‘농식품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김 사장은 “올 2월 ‘농식품 빅데이터 거래소(KADX)’를 출범해 188종 데이터 개방(5분야) 및 ‘농산물 물류정보’ 등 거래소 고유 혁신서비스(3종)도 제공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본격적인 플랫폼 정착을 위해 데이터 개방 295종 및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6종으로 확대·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향후 자생적 플랫폼 운영체계를 마련하여 농식품산업의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추진해 나가며, 농식품 생산·유통·소비 데이터를 중심으로 공공·민간기업 생산 데이터가 플랫폼을 통해 거래될 수 있도록 시장조성자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농수산식품 수출목표 106억불…목표 달성에 최선 다할 것   ‘작년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수산식품 수출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98.7억불로 사상 최대 수출액을 달성했다. 금년에도 6월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한 54억불로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농수산식품 수출 활성화 및 수출 확대 방안에 대해 △디지털기반 마케팅 강화 △국가별 맞춤 수출지원 정책 △수출유망전략품목 육성  △비관세장벽 애로 해소 4대 중첨 추진계획을 소개하면서 “올해는 전방위적 지원을 펼쳐 올해 농수산식품 수출목표 106억불 달성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유력 온라인몰이나 메가 인플루언서와 연계해 상설 한국식품관을 운영 ‧ 확대하고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기반 홍보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며 “신남방, 신북방, 주력시장 등 국가별 맞춤 수출지원 정책으로 시장다변화를 통한 안정적 수출 구조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농어가 소득연계 품목과 인삼・김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HMR‧기능성 품목 등을 발굴・육성하며, 코로나19로 강화된 비관세장벽에 수출업체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수출업체 1:1 맞춤지원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채널과 협업 통해 라이브커머스 진행…3월부터 총 14회 판매 실적 13억   작년 4천억원대를 기록한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가 올해 2조8천억원, ‘23년에는 10조원으로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aT는 최근 온라인 채널과 협업을 통해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유통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김 사장은 “라이브방송을 활용해 농수산물의 온라인거래 활성화 및 판로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국산 농수산물의 소비 촉진에 힘쓰고 있다”면서 “지난 3월부터 총 14회 라이브방송 진행으로 누적 시청자 210만명, 판매 실적 13억을 기록했으며, 특히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판로 확보가 어려운 지역농산물 및 특산물의 판매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aT는 지자체 특산물 판매지원 및 온라인 유통활성화 업무협약(MOU) 체결, 다양한 온라인 채널과 협업을 통해 우수한 제철 농수산물 및 지역특산물 판매를 지원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는 K-Food Fair·국제식품박람회 등과의 연계로 우리 농수산식품의 국내외 신규 판로 개척지원에 적극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천적 ESG경영 위해  ‘ESG경영 CEO자문위원회’ 발족   최근 전 세계적으로 ESG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 활동에 이윤추구뿐만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의 환경·사회적 책임, 투명한 경영이 요구되고 있다.     aT는 지난 4월 28일 ‘ESG경영 선포식’을 개최하고 [E:지구를 살리는 지속가능 농어업 지원] 온라인거래 활성화 및 친환경 농산물 소비 확대 등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적극 동참 [S:농어민과 만드는 국민 행복 먹거리] 온라인 경매, 직매장‧직거래 활성화 등으로 지역 상생 및 경제활성화를 도모 [G:국민에게 신뢰받는 투명한 aT] 국민‧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정보공개 확대 등으로 투명성을 제고 라는 ESG추진 방향을 선포한 바 있다.    김 사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기 위해 계획수립 단계부터 외부전문가와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적극 반영하여 ESG추진 방향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천적 ESG경영이 되도록 6월 18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ESG경영 CEO자문위원회’를 발족했고, 지속 운영을 통해 사업 추진시 도출된 의견들을 적극 반영해 우리 농어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데 기여하는 aT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6년만에 A등급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동안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혁신 노력을 인정받고 직원들에게 큰 선물을 준 것 같아 무척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현장 활동을 강화해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1-07-22
276
썸네일
한국경제문화연구원, 근대통신박물관 개관.          Modern Communication Museum   근대통신박물관 홈페이지 개설! 본 연구원 사무총장 이세훈께서는 체신부(現,정보통신부) 임용을 시작으로 40년 정보통신 전문가로 현장에서 통신역사와 그 뿌리에 관심을 갖고 2,000여점의 통신 사료를 수집하여 왔다.   수집하여온 소장품은 종류, 시대, 기능별로 구분하여 전신기, 전화기, 진공관, 무전기, 통신장비, 계측장비, 가전 등 찾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우편, 전보, 사진, 기념물, 서적, 인쇄 등으로 분류되는 통신역사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현대통신 사료도 포함하여 통신기기의 발전사와 그 현장을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동안 발품과 시간 그리고 비용을 투자해 공들여 수집한 소장품이 여기 박물관을 통해 후대에게 역사적인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누구에게는 하찮은 고물도 필요한 곳에 함께하면 소중한 보물로 탄생하게 된다며,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통신관련 물건이 있다면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https://mcmuseum.co.kr/%ec%86%8c%ec%9e%a5%ed%92%88/   1885년 근대통신, 언택트의 시작!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아이폰을 선보인 이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24시간 통신에 접속된 상태로 살아간다. 인터넷과 컴퓨터의 등장도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모스부호를 이용한 전기통신(電信)에서 비롯된 것이다.   1885년 전기통신이 도입되는 시기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다. 이때 전신시설이 속속 가설되고 전보·전화가 개통되면서 이로서 고려시대부터 연기와 횃불을 이용하던 봉수와 파발제도는 구한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근대통신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근대통신의 역사는 1885년, 인천을 기점으로 서울을 거쳐 평안도 의주에 이르는 경인·경의전신선, 이른바 서로전신선의 개통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전보(電報)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지금의 정보통신 기술의 원천이라 하겠다.   전기통신 140여년의 현재는 초연결 시대로 빠르게 진화하였다. 이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실질적인 통신수단 이라기보다는 영화나 소설의 장면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한때 각광받던 근대통신 시설은 역사 속으로 그 발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근대통신박물관 소개 중에서-   근대통신박물관 이세훈 e-mail : oasisgaja@daum.net
MASTER 2021-05-14
275
썸네일
[소설 최치원 ⑥] 제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 선생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유⋅불⋅선 융합에 더하여 풍류도를 설파한 종교철학자이며, 개혁적⋅지성적 실천가로서 한류문화의 발원지다. 이러한 최치원의 업적과 사상 등을 기리기 위해 중국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시에 최치원의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고, 10월 15일을 최치원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그곳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수록하여 학생들에게 최치원 선생의 빛나는 업적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최치원 (인물)기념관조차 건립되지 못하고 있 등, 입체적인 연구나 선양 등을 위한 기반구축조차 미미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에 후손 최진호 작가는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은 천 년 전에 살았던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으면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교훈을 건네주는 큰 스승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어 이 소설을 출간했다.   소설 최치원(전5권)에 일관되어지는 흐름은 최치원의 풍류도 선비정신을 한류문화의 진정한 시발점으로 그려냈고, 최치원의 애국심 및 개혁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나갔다. 더하여 사실성을 바탕으로 소설적 요소까지 가미시켜가면서 최치원의 일생을 흥미진지하게 풀어냈다. 특히, 최치원이 남긴 수많은 시문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내용전개의 사실감을 높인 것은 소설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 선생의 사상과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는 바이블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가길 기대한다.   ▲ 소설 최치원 제5권 -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소설 최치원 제5권 -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차례 미륵의 추락  서라벌의 굴욕 곡령청송 현자와 소통하다 평화통일의 비밀 후백제를 바치다 평화를 위한 민초들의 결단 자운의 빛을 찾아서 이국이민시의 실천 내 몸의 숨결(풍류도) 승천하는 네 마리 학 최치원이 남겨둔 글 자유인실행自由人實行 추서   책 속에서...   궁예는 말을 마치고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이내 눈을 감고 마치 부처인 양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대왕마마, 참으로 훌륭하옵신 법명이옵니다. 선종이라... 이 얼마나 멋진 법명이옵니까? 그래서 오늘날 대왕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미륵까지 되신 게 아닙니까?” 내관은 계속 허리를 굽히며 궁예를 추어 올렸다. “그래, 그래, 나는 앞으로 새 세상을 열 미륵이니라. 암, 미륵이고말고! 나는 후천 개벽을 하여 반드시 새 세상을 열고 말 것 이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이 군왕을 거역하거나 역심을 품은 자들을 제거해야 되느니, 나는 관심법을 터득한 미륵이니라. 내관,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맞추어 볼까?” 궁예가 눈을 부라리고 내관을 향해 다가갔다. “저 같은 놈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왕마마만을 의지하며 신천지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9p)   문무백관이 모두 모인 어전에는 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등불처럼 이글거리는 견훤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신들은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특히, 창칼을 그러 쥔 장수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갈 듯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도다! 우리의 철천지 원수 신라를 쳐부술 때가 왔도다. 우리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대왕 재위 20년인 경신년에 신라와 당나라 놈들이 쳐들어 왔었다. 충신인 계백 장군이 황산벌로 나가 화랑 반굴과 관창을 베었지만, 구름같이 몰려오는 나당연합군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계백 장군의 뜨거운 심장과 오천결사의 피눈물을 삼키고 백제는 운명을 다하였다. 김유신은 웃으며 반월성으로 올라왔고, 소정방은 껄껄대며 고토를 짓밟았다. 오늘은 그로부터 꼭 이백육십칠 년이 되는 해다. 이제 서라벌로 달려가 백제의 원한을 씻고 그 땅, 서라벌을 폐허로 만들어야 한다!” (50p)        치원이 말을 마치자, 법당에서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크게 터져 나왔다. 법회에 참석했던 최언위는 달리 방향을 잡은 최승우의 빈자리를 채우며 최치원의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화엄경전이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 해도 백성들이 도를 멀리하여(人遠道)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 화엄경전을 사부대중이 알기 쉽게 풀이해 줄 수 있는 논장의 글을 찬술해 줄 수 있겠습니까?” 법회가 끝나고 모두 법당을 빠져나가자 희랑스님이 최치원을 불러 조용히 청을 했다. (69p)   ▲ 최치원이 찬술한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국보 제315호)' '5권 21p'   치원은 풀어쓴 경전의 이름을 법장화상전(송나라 팔만대장경 논장에 수록되었음. 현재 일본 고잔사에 있음)이라 하였다. 경전 내용을 찬찬히 살펴 본 후 희랑스님은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치원은 이 세상의 삶은 우주 음양오행의 일치로 살아야 되고, 너와 나 하나의 공동체인 생명의 빛은 내 마음이 모든 일의 실천 근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일체유심조의 으뜸으로 초발심을 항상 유지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생활의 지혜, 즉 지극한 도는 눈앞에 있다(至道在目前)를 쉽게 설명한 것이다. (73p)   태조 왕건은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는 목청이 다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아, 좋다마다요. 이제 고려와 우리 신라는 형제국이 되었는데, 무엇이 아깝고 서운하겠습니까? 대왕마마께서 취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취하십시오. 고려 왕국과 화친하는 의미에서 제가 제일 아끼는 종제(從弟) 유렴(裕廉)을 질임(인질)으로 개경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경순왕의 말이 끝나자 한쪽 구석에 있던 유렴이 앞에 나와 태조 왕건에게 예를 올렸다. “그렇게 아끼시는 종제를 우리 개경에 보내 주신다니, 과인이 잘 보살피겠습니다. 참으로 미인이구려. 그러나 제가 모셔갔으면 하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103p)   최치원은 평화통일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었다. 그리고 똑 같은 내용의 ‘평화이국서’ 3부를 만들어 밀봉하고 봉투위에 평화이국서(평화(平和利國書)라고 했다. 이 문서를 신라 경순왕의 특사인 마의태자와 대아찬, 고려 왕건왕의 특사인 무성도사와 최언위 국사, 후백제 견훤왕의 특사인 보리 왕후와 최승우 국사에게 은밀히 전달했다. (116p)   일찍이 최치원이 ‘해인사 선안주원벽기’에 썼던 것이다.   위대하고 위대하도다!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이 으뜸으로 삼는 것은 하늘이다. 사림이 도를 실천하는 것이요. 도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다. 그러므로 도가 높아진다면 사람은 저절로 귀하게 된다. (171p)   최치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최치원을 따라 무량스님도 일어나서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합장을 했다. 치원도 합장을 하며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최치원은 그토록 그리운 해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해인사로 향하는 최치원은 여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원효대사와 신라의 요석 공주 사이에 태어난 아들 설총은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허나, 모든 인연법 따라 생긴 것이니, 모든 것은 같으므로(만법여일) 모든 것은 한 군데로 되돌아간다(만법귀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대덕을 넓은 바다(大德如海)와 같이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살라지 않는가. (217p)   ▲ ‘최치원의 천부경 풍류도에서 발원되는 생명탄생의 신비로움’을 형상(이미지)화 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5권 331p)   대사가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절을 ‘성주’라고 이름 하셨으니. 절로서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용렬한 중을 지극히 총애하시니, 재능도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흉을 내어 높은 자리를 차지한 느낌입니다. 이는 해조(海鳥)인 원거가 바람을 피해 뭍으로 오자, 봉황새로 잘못 안 참새가 날아들었다는 것에 비유할 만하니, 날씨가 궂을 때 산 속에 숨어 무늬를 윤택하게 한다는 표범의 고사(故事)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였다(270p)   보리황후 능을 참배하고 왕거인과 무성도사와 헤어진 후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밀리엄 수녀는 여전히 성당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녀도 나이를 이기지 못해 백발을 쓸어 넘기며 굽은 허리를 겨우 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어요.” 손에 건 묵주를 헤며 밀리엄 수녀가 조용히 말했다. “수녀님은 고향이 그립지 않으세요?” 호몽이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물었다. “이 나이에 고향이 어디 있겠어요? 이 언덕이 저의 고향이지요. 제가 이곳에 온지도 육십여 년 가까이나 되는데요. 이곳에 와서 저를 따라 천주를 믿는 백성이 저의 가족이고 형제들이이죠. 최아찬 께서는 제가 천주님 나라로 떠나고 나면 저를 이 언덕에 묻어주세요. 십자가가 잘 보이는 이곳에요.” 밀리엄 수녀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때 언덕에 있던 아이들이 성가연습을 하며 느티나무 밑에서 큰 소리를 냈다. “저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죠.”(316p)   화개동이란 시문에서 동방군자국(한반도)은 해와 달의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에 있습니다. 동쪽나라 동방군자국 화개동(불교 화엄의 세계)은 별천지 속의 신선의 경지, 신선 옥 베개 밀치고 일어나니 어느새 천 년이구나. 즉 오늘 하루의 순간순간들을 천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 이순간이 제일 소중한 시간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333p)   왕의 지시를 받은 조정대신이 풍수지리에 밝은 현자를 찾아서 어떠한 장소가 좋으냐고 물어보자 현자는 “최치원 선생의 위대한 행적이 남아 있는 곳을 모두 살펴본 후 인과관계가 후세까지 전해 갈 수 있는 곳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자는 최치원 행적을 면밀히 살펴보고 와서 조정대신에게 보고하기를 신라 태수직 생활을 하던 곳 중 낭혜화상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성주사와 고려국 국태민안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다고 하는 부석사(충남 서산군 소재) 지역 중심에 소재하고 있는 천하명당으로 소문난 보금산(충남 홍성군 장곡면 소재)이 좋다고 말했다. 조정대신이 입궐하여 현종왕에게 즉시 이러한 사실을 고하자 현종대왕은 신성묘를 보금산 자락에 즉시 조성하라고 하명하였다. (346p)  - 끝 -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7
274
썸네일
[소설 최치원 ⑤] 제4권 하늘의 비밀.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 소설 최치원 제4권 - 하늘의 비밀 소설 최치원 제4권 - 하늘의 비밀   차례   대숭복사비 여왕의 눈물 예의 고장 태산군(현 정읍시) 액운 충서의 고을 부성군(현 서산시) 소림사의 무영검 시무십조時務十條 백성 위한 대관림大館林(현 함양군) 이별과 해후 해인사 가는 길 해인사 마애불 여왕의 죽음 새로운 길 하늘의 비밀   책 속에서…   토함산 기슭에는 왕실의 모든 고관들, 서라벌에 들어와 있던 외국 사신들. 동시와 남시 그리고 서시에서 큰 장사를 하는 모든 장사꾼들, 그리고 개운포와 감포 일대에서 장사를 하는 왜인들, 노인들과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파른 길을 오르던 노인들은 낯모르는 젊은이들이 웃으며 달려와 등을 내미는 바람에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아이고 내 생전에 이렇게 잘 생긴 젊은이가 씩씩하게 업어 주는 일도 처음이네. 우리 아들은 농사짓느라 힘들어 허리도 못 펴고 손자들은 어린데, 아니고 어디서 온 젊은이신가?” 한 노인이 예상치 못한 호강에 즐거워했다. “남산 기슭에서 훈련을 하는 화랑이옵니다.”(14p)   대저 도(道)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서 차이가 없다. (道不遠人 人無異國)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법(佛法)이나 유학(儒學)을 배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서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 통역을 거듭해 가며 학문에 종사할 적에, 목숨을 걸고 통나무배에 맡기면서도 마음은 보주(寶洲, 西國)에 달려 있다. 빈 채로 갔다가 가득 채워 돌아왔고, 험난한 일을 먼저하고 얻은 바를 뒤로 하였으니, 역시 보옥(寶玉)을 캐는 자가 곤륜산(崑崙山)의 높음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자가 검은 용이 사는 바닷물 속의 깊음을 피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66p)   ▲ 최치원이 남긴 쌍계사진감선사대공렵탑비문(최치원 제4권 67p)   서라벌 외곽에 ‘지은’이라고 하는 처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미니를 봉양하고 있었다. 낮에는 장군의 집에 가서 빨래를 해 주고 방아를 찧어주며 쌀을 얻어와 어머니와 함께 끼니를 겨우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날 장군의 비복에게 겁탈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 슬퍼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고갯마루에서 목을 매려 했다, 때마침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효종랑이라는 화랑이 그 모습을 발견하여 그녀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낭자, 어찌하여 이처럼 젊은 나이에 그리 흉한 짓을 도모하고 있소?” “부끄럽습니다. 이대로 죽게 해 주소서.” (94p)   학문이라는 것은 익히고 또 익혀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어느 누구와의 약속들은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심법개혁 및 풍류지도 팔훈을 말했다. 그 풍류지도 심법개혁 실천방편으로 ‘머리’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창의’가 있는 것이 첫째이다. ‘이마’에는 남을 존경하고 배려하며 나를 낮추는 ‘예절’이 있는 것이 둘째이다. ‘귀’에는 남의 말을 지혜롭게 경청하는 마음의 ‘소통’이 있는 것이 셋째이다. ‘눈’에는 즐거운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미소’가 있는 것이 넷째이다. (105p)   그 중에서도 최치원이 주목한 것은 그 절의 입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골짜기 안에 그런 마애불이 숨겨져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치원은 손수 물걸레를 들고 그 마애불을 닦았고, 부임 첫 행사로 그 마애불 아래에서 법회를 열었다. 삼존마애불상 한가운데 여려 입상이 있고, 오른편에 보살 입상이 있고, 왼편에 반가사유상이 아로 새겨져 있었다. 여래 입상은 풍만한 얼굴에 은행 같은 눈, 둥굴고 긴 눈썹, 얕고 넓은 코를 하고 있으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가사가 발등까지 덮였는데. 발밑에는 연꽃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보살 입상은 머리에 산 모양의 관을 썼고. 윗몸은 벗었으며 두 손을 앞에 모아 구슬을 잡고 있었다. (143p)    보리는 치원의 칼에 베어 어깨를 많이 다친 것처럼 힘겨워하며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 “오늘은 내가 패했으니 이만 물러가자.” 보리가 패배를 선언하자 부하 장수와 병사들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발길을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게 보리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적고적 병사들을 바라보며 치원은 가슴이 아렸다. 치원은 보리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 한마디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아직도 변함없는 보리의 진심어린 따뜻한 손길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당나라로 가는 먼 길이 그리 길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치원은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가는 보리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157p)   사법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사법정의가 왜곡되면 국민정신이 반국가주의로 이반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바르게 운영될 수 없고 결국 패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사법관리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사법특별기구의 장은 요순시대의 왕위 계승을 민주적인 선출방식으로 선출했던 것과 같이 선거에 의해 선출해야 합니다. (185p)    호몽이 낯을 붉히며 대답했다. “내 가기 전에 그 막내아들에게 이름을 내려주지.” 여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취악대가 다시 울리고 무희들이 춤을 췄다. 여왕의 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주위로 인근 태수들과 백성들의 행렬이 삼십 리 넘게 이어지며 온 산길을 덮었다. 그야말로 꽃밭이 따로 없었으며, 향기로운 그 내음이 신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최치원은 여왕의 연을 자신의 마음이 서려있는 명륜당으로 안내했다. 백성들은 천령군이 생긴 이래 최초로 새로 세운 명륜당에서 대왕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벌이게 된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천령군 같은 궁벽한 산골 마을에서 온 백성이 여왕마마를 모시고 현지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은 신라 개국 이래 최초 일일 거야,”(203p)   ▲ ‘최치원의 풍류도를 통한 인생지도 및 처세지도’를 만드는 창조의 길을 만드는 것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4권 245p)   국사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옳겠습니까? 서남쪽 무주 땅에 견훤이 신라 천년 사직의 새 주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한수 이북의 금성(철원)지방의 궁예입니까?” 치원은 재촉하며 물어보았다. “무주의 견훤이 새 주인이라면 내가 왜 무주 땅에서 그대가 있는 이곳까지 왔겠는가? 또 궁예가 주인이라면 내가 금성 땅으로 가지 왜 그대 곁에 있겠는가? 아무 말 말고 저 고개를 넘어 보세” 국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섰다. “그러면 소생의 미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256p)   치원은 비장한 어조로 국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 “거 참 여러 가지로 잘 되었네. 절친한 주지승과 가형이 있고, 곳간에는 풍족한 양식이 쌓여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겠나? 더구나 절 밖에는 든든한 승군이 천 명이나 지키고 있지 않은가? 예로부터 명당은 비산비야 엄택곡부(非山非野 奄宅曲阜)라 하였는데, 바로 이 가야산이 그런 곳이지. 산이 높고 크기는 하나 들도 적당히 있고, 산세가 기묘하여 절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막아주니 오래도록 보존되고 널리 번창하여 법보사찰로서 명성을 계속 이어갈 사찰이지. 명당 중의 명당이야.” 국사가 얼굴을 활짝 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한 동안 두 사람은 묵묵히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272p)   치원은 사람을 시켜 가족들을 집으로 모이게 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반야부인은 겨우 힘을 내어 말하였다. “내 살아생전에 너희들에게 몸소 효를 실천해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너희들이 보고 느끼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이 어미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효는 가족의 얼굴이고 거울이네. 자손만대에 까지 효가 이어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가 노력하고 도와주도록 하게.” (295p)   천부경은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로 시작해서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일종무종일 일一終無終一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의 이치를 여든 자의 글로 표현한 것이지요. 즉, 자연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천부경 81자와 풍류도 50자를 합하면 131자가 됩니다. 하나(一)에서 시작된 우주(三)는 하나에서 끝이 되나 이 끝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연결고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일시무시일(一), 인중천지일(삼(三)에다 풍류도 사상을 융합하고 포용하여 새로운 문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치원은 사례를 들어 상세히 설명했다. (308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3
273
썸네일
[소설 최치원 ④] 제3권 꿈꾸는 별.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 소설 최치원 제3권 꿈꾸는 별 최치원 제3권 꿈꾸는 별   차례 시성들과 소통 아버지 최견일 공公 한림학사 왕의 잔치 토함산 심야의 입궁 대왕의 선물 헌강대왕 대왕의 유언 은함殷含 수상한 세월 여왕의 시대 서라벌의 온기 삼대목 왕거인 부록(소설 속 용어 해설 · 계원필경 · 화엄일승법계도)   소설 최치원 제3권 - 꿈꾸는 별   책 속에서   그 다음으로 생겨난 것은 춘추전국시대. 나라와 나라 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진나라 진시황은 13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진시황은 거상 여불위 재상(진시황의 숙부)의 도움을 받아 정치를 해나가면서 큰 꿈을 키웠다. 그의 큰 꿈은 춘추전국을 한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기원전 221년 자기 나라 백성에게 천하통일을 선포했다. 통일된 하나의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세계 중심 국가로 되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진시황은 인재등용 조건으로 출신국이나 귀천을 구별하지 않았다. (10p)   몇몇 백성들이 모여 수군거렸다. 그때 신라 골품제도를 잘 알고 있는 한 사내가 나서 미욱한 여인들을 타박했다. “거 모르는 소리.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그건 안 될 소리지. 제아무리 당나라에서 고관대작을 했더라도 신라에서는 6두품 출신이잖아. 잘 해야 7등급이나 8등급 벼슬을 받을 거야.” 신라의 골품제도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최치원 일행의 수레가 서문을 통과하여 월성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수군거리며 부러워했다. 한 사내가 그 사이를 비집듯 어렵게 통과하자 풍물패가 풍악을 울리는가 싶더니, 궁중에서 보낸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을 추며 최치원 일행을 환영하고 있었다. (57p)   “아마 회교를 믿는 회교도일 것이옵니다. 장안에도 회족들은 따로 모여 살며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고 있사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자신들의 성지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옵니다. 마호메트라고 하는 자신들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성인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옵니다.” 최치원이 소상하게 아뢰자 왕은 그의 학식에 감동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호메트라는 성인은 서역 성인이오? 그렇다면 야훼를 믿는 경고 신자와는 어떤 관계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대왕은 다시 고개를 들어 치원을 바라보았다. (100p)   기도가 끝나자마자 마르코 수도사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고기부터 손을 댔다. 치원과 호몽은 처음 만난 처녀와 총각처럼 수줍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했다. “저는 서라벌이라는 타국에서 이렇게 행복한데, 저의 부모님은 이 시간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참.” 식사를 마친 밀리엄 수녀가 서쪽을 바라보며 탄식을 했다. 그러자 호몽이 하소연하듯 중얼거리는 그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어린 나이에 머나먼 당나라로 건너가 오랜 세월 외로움을 느끼며 생활을 해 본 치원은 수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관심이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빠른 시일 내 모든 것이 안정되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자, 자... 어서 일어나요. 갈 길이 멀다구요(127p)   치원이 몸 둘 바를 몰라 아뢰자 대왕은 검지를 인중에 대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천만에요. 천만에! 왕의 밤일이라는 것이 별거 있겠소? 주연을 베풀어 향연에 젖고, 미인을 탐하여 그저 주지육림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 아니겠소? 하지만 그 일도 하루 이틀이오. 그 나물에 그 밥 먹듯이 매일매일 향락과 열락이 이제 너무나 지겹소이다. 지난번 접견 시에 과인은 이상하게도 수녀님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소. 별 말은 없지만 수녀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는 느낌을 갖게 했소. 지금까지 우리 궁에는 수많은 고관대작과 외국인 드나들었지만 난 그날 수녀님에게 매우 색다른 느낌을 받았소, 수녀님 존함이 어떻게 되오?” 대왕은 밀러엄 수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세례명이 밀이엄이고 세속의 이름은 배아숙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지어주진 이름이지요.”(144P)   계원필경 서문에 「사람들이 백을 하면 나는 천배 이상 노력하여 깨달은 바를 반드시 실천하였다(實得人百之己千之)」라고 쓴 글은 공자가 말씀한 인백기천人百己千보다는 실득實得 이 두 글자는 공부하여 얻은 지식을 받드시 사회에 실행하여 남에게 도움을 주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실천주의 사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뜻이 더욱더 과인의 가슴에 깊이 와 닿았소. 노력하여 깨달은 것을 뜨거운 열정으로 반드시 실천하는 정신을 국민정신으로 백성들에게 널리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조정 대신들을 이보다 더 정신으로 나라를 위해 천배이상 노력해 줄 것을 당부 드리겠소. (162p)   ▲ ‘최치원 실득인백지기천지(實得人百之己千之)’ 정신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3권 169p) 도가 어찌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겠느냐. 설령 배움 없는 시골뜨기라 하더라도 능히 속세에서 벗어날 수 있느니라. 즉, 우주만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능력을 갖추어 자기 생각을 상대방과 함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서로 소통하는 것이 도의 실천방법이다. 이로써 하늘과 땅이 말하지 못함을 알았고, 지극한 도에 이르는 길이 아주 멀다는 것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극한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하고 원래 눈앞에 있다고 했다(至道在目前). (210p)   진성여왕 또한 위홍과 보내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습니다. 절대를 저를 숙부라고 부리지 마십시오. 상대등이라는 관직을 부르시거나 그냥 대각간으로 부르시든지요.” 위홍은 짐짓 엄숙하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는 숙부라고 부르고 싶어요. 정말 숙부가 안계시면 이 사람이 어찌 왕위를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전 숙부가 항상 제 곁에 계셔서 무척이나 좋습니다. 선덕여왕께서도 숙부이신 용천공을 하늘처럼 믿다가 결국은...”소녀처럼 어리광을 부리던 여왕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대왕마마 황공하옵니다. 그 다음 말은....”(253p)   아니, 저런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이렇게 먼 이역까지 찾아온 것도 모자라 이토록 자그마한 대진사에서 저토록 진지하게 예배를 보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경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 교당 끝에 서 있는 십자가는 또 무슨 의미란 말인가. 왜에서 건너온 경교 신자들도 상당한 수준의 무사들이라는데  마치 조용한 양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순명하며 겸손한 모습은 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의식을 지켜보던 상대등은 이처럼 기이한 광경에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면서 유리창으로 불리는 곳으로 형형색색의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맞았다. 지금까지 서라벌에서 구경해 본 일이 없는 희한한 물건이었다. “저 유리창은 어찌 만든 것인고?” 상대등은 옆에 있는 치원을 향해 물었다. (259p)   상대등 역시 도통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구화상에게 그 글을 건네어 의미를 알고자 했다. 상대등에게 수상한 방문을 건네받은 대구화상은 그 글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어가며 의미를 찾으려 몹시 애를 썼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다라니경을 흉내 낸 것으로, 그 내용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구화상이 잠시 말을 끊고 주저하자 상대등은 더욱 궁금해졌다. “빨리 해석해 보시오. 내용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상대등이 성화에  못 이겨 대구화상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277p)   최치원이 가지고 간 보따리를 들고 그들을 따라 토굴 속으로 들어갔다. 황토와 바위가 절반쯤 섞인 그 토굴 안에는 거적이 깔려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달마대사인 듯한 눈이 큰  화상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한쪽 벽면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 것이 마치 신비로운 세계에 빠져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왕거인이 누운 머리맡에는 촛불과 향, 그리고 큰 칼 한 자루가 물그릇 위에 놓여 있었는데, 그 칼끝은 벽에 새겨진 북두칠성을 향해 매서운 자태를 드러냈다. 토굴 안을 둘러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최치원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가지고 간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약기름을 꺼내 제일 상석인 듯한 사내를 불러 왕거인의 옷을 벗기고 화상을 입은 상처에 기름을 발라 주었다. 최치원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왕거인은 아픔 때문에 꿈틀꿈틀하면서 희한하게도 비명대신 이상야릇한 소리를 질렀다. (292p)   “뭐야? 해인사 뒷산에?” “예, 스승님. 그 가야산 어딘가에 그 절을 창건한 분들이 서라벌, 아니 통일신라의 강역 중에서도 산수 아름다운 곳곳에 불사를 시작하면서 해인사는 특히 국가의 번영과 안위를 위해서 후세까지 이어질 곳이라 예견하여 해인사 절 뒤편 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서라벌과 동해의 해 뜨는 모습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바위들 중 자연적으로 부처 모습을 갖추고 서 있는 큰 바위를 발견하고 그곳에 미륵 세계를 알려주는 신비스러운 마애불을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이때 호몽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왕거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에이 난 또 뭐라고. 왕거인 그건 좀 믿기 어려운 얘긴데? 우리가 듣기로는 지금 해인사에는 스님과 거주하는 신도들만 이백 명이 넘고 승군이 계곡 사이에 팔백 명이나 진을 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큰 마애불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면 누구든 찾아내지 않았을까?” (302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3
272
썸네일
[소설 최치원 ③] 제2권 통찰의 지혜.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 최치원 제2권 통찰의 지혜 최치원 제2권 통찰의 지혜   차례   쌍녀분 강남 아가씨와 도사 종리권의 제자들 첫사랑 보리 10년 만의 서라벌 소림사의 인연 난을 만나다 장군이 부르다 쌍가락지를 전해 주다 회남진淮南鎭에서 전란 속으로 격황소서 혼돈의 정점 황소, 물러나다   책 속에서…   현령은 몸을 꼿꼿이 세우고 두 신임 현위를 향해 다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은 마치 신임 관리에 대한 노련한 상급자의 매서운 훈육과도 같았다. 현령이 나간 후 치원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눈앞에 놓인 문서들을 살피며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때 단정히 앉아 벌써부터 일을 시작하는 치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급 관리들이 다가왔다. “이 사람아! 부임하자마자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 되느냐. 대충 설렁설렁해. 여기는 장안처럼 요란하게 행정을 하는 곳이 아니야. 금표 현위와 적당히 상의해서 대충대충 해치워. (12p)   그날 밤, 제를 올린 후 시를 쓰고 나서 치원은 쌍녀분이 보이는 이씨 집성촌 마을 끝에 있는 초현역招賢驛이라는 객관에서 묵게 되었다. 객관의 늙은 하녀가 저녁상을 치우고 나자 황초가 바람에 일렁이고 칼끝 같은 그믐달이 스러지면서 치원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그때 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단정한 차림의 두 여인이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그대들은 뉘시오?” 치원은 자꾸만 처지는 눈꺼풀을 부비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두 여인은 말없이 상을 내려놓고 다소곳이 예를 다해 큰절을 올렸다. “혹시 그대들은?” 치원은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때 한 여인이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31p)   유혼은 한스러움 떠나 외로운 무덤에 의지하며 복숭아 빛 뺨 버들눈썹 봄을 맞이했네 학을 타고 삼신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길 찾아가기 어려우며 봉황이 공중으로 날아 먼지 되었네 세상살이 그때에는 손님에 부끄러웠는데 오늘 낯모르는 사람에게 애교 부리네 시에 내 뜻 알리는 게 매우 부끄러워 돌아올 시 한 수에 한 가닥 걱정이네 (39p)   하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그는 우물가를 열두 번 돌고 나서 무릎을 꿇더니 이내 북쪽을 향해 주문을 외며 신령에게 무엇인가를 받고자 하는 염력 의식을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한참 동안 장중한 주문을 외웠다. 얼마 후,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미리 준비한 커다란 함지박에 물을 받고는 양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기도 드렸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북두칠성님이시여, 이제 하강하시옵소서.” 여 도사가 북쪽 하늘을 향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맞듯 정중한 몸짓을 하자 놀랍게도 함지박의 물 위에는 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그 일렁이는 함지박의 물속에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떠오르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66p)   ▲ ‘행정실명제’를 실시하여 나라와 백성의 이익을 키우는 것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2권 223p) 지난밤 종리권선사는 제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소림사로 떠나는 보리가 못내 불안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마침 그 이야기를 들은 현준스님이 자청하여 보리와 함께 길을 떠나기로 했다. “하, 고것이 반년도 되지 않았건만 깊은 정을 남겨 놓고 떠나가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것 같네. 떠나려고 한 이는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울 터인데.” 선사가 빈 입맛을 다시며 허연 턱수염을 쓸어 내렸다. 종리권선사는 만귀 화상에게 전하는 서신을 현준스님에게 건네주며 보리의 앞날을 부탁한다는 말도 전하도록 당부했다. (110p)   “앞으로 나를 친동생처럼 여겨주세요.” 어느새 무성은 제법 스승답게 지도자로서의 위엄을 갖추며 보리의 손을 그러쥐었다. 그런 무성을 바라보는 보리의 마음 한 구석에는 치원에게서 느꼈던 따스한 기운이 새롭게 움트고 있었다. 무성이 자기소개와 더불어 친부모님에 대하여 설명했다. 부모님의 선대는 옛 고구려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고구려가 멸망하자 가솔들을 이끌고 당나라로 건너와서 황족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교적 높은 벼슬도 얻었다. 무성의 아버지는 무당파 방주고, 그의 어머니는 황실의 공주로서 혼인을 하여 무성을 낳은 것이었다. (131p)   황제의 명은 지체 없이 이어졌다. 그제야 고병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고병 장군 옆에서 처음부터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장군을 보좌하던 젊은 종사관도 함께 일어나 절도 있게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황제는 의례적으로 예를 받다가 그 젊은 종사관을 주목했다. “그대는 짐이 어디선가 본 듯한데?” 황제가 고개를 내밀며 젊은 사내를 주시했다. “폐하, 이 젊은이는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던 건부원년乾符元年에 장원 급제를 했던 제 종사관 고운顧雲입니다.” 고병 장군이 웃으며 황제에게 고운을 소개했다. 그제야 황제는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151p)   대장군은 최치원의 보고를 받고 명문의 격문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대장군의 명을 받은 치원은 호몽이 기다리는 신혼의 달콤한 꿈도 잊은 채 도덕경과 춘추전과 손자병법은 물론 과거 전쟁에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들의 행적 중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제갈공명의 적벽전 등을 소상히 파악하였다. 바르게 살지 않고 나쁘게 살면 하늘·땅·사람 지하에 있는 모든 영혼들도 너를 죽일 것이며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황소에게 벌을 내린다는 요지로 이 시대는 물론 후세대까지 최고의 격문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격황소서를 작성했다. (217p)   도덕경에 이르기를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고 소낙비는 온종일을 갈 수 없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조화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이랴.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에 이르기를 ‘하늘이 아직 나쁜 자를 놓아두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죄악이 짙기를 기다려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너는 간사함을 감추고 흉악함을 숨겨서 죄악이 쌓이고 앙화가 가득하였음에도 위험한 것을 편안히 여기고 미혹되어 돌이킬 줄 모르니, 이른바 제비가 막 위에다 집을 짓고 막이 타오르는데도 제멋대로 날아드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솥 속에서 너울거리지만 바로 삶아지는 꼴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22p)   치원과 평소에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돈독히 쌓아 왔던 문인들과 문사들도 모두 찾아왔다. 그들은 저마다 비단에 자신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기념품으로 들고 왔다. 그중에는 운하 지역에 사는 진사 양섭오만과 강동 제일의 시인으로 이미 문명을 떨치던 나은도 있었다. 나은은 치원보다 스물네 살이나 나이가 많아 이미 백발을 흩날리고 있었다. 치원은 이미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나은의 손을 잡고 안타까워했다. “형님은 이미 강동 제일의 시인입니다. 그까짓 진사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진사에 대한 미련은 버리세요. 형님은 이미 강동을 넘어 천하제일의 시인이라는 것을 이 당나라에서 모르는 이가 또 있습니까? 문명으로 만족하십시오.” (285p)   한나라 황조의 경우 이웃 해동국에서는 해와 달 하늘과 땅 사람이 모두 하나라고 일찍이 주장하는 현자들이 많아 그곳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음을 안 황제가 그곳에 가서 홍익인간 사상을 알아오라고 사신을 해동국에 보냈고 진나라 시황제도 불로초(일명 황칠 또는 황금 옻나무를 말함)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해동국으로 보냈다는 것이 생각나서 나라와 나라 간에 백성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입고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공기(長風)와 허공에 떠있는 해와 달은 똑같이 보고 있으므로 해와 달을 볼 때마다 그댈 생각할 것이라고 고운에게 말했다.(293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2
271
썸네일
K-Classic, 2022년 창립 10주년 앞두고 발기인 간담회. 2012년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창립한 K-Classic 조직위원회가 내년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발기인인 모지선 화가, 임동창 작곡가, 탁계석 평론가 회장이 사업 시행을 위해 21일 낮 서울에서 만남을 가졌다.     ▲ 모지선 화가 임동창 작곡가 탁계석 평론가   이들은 지난 9년의 작업을 결산하고, 향후 K-Classic이 고통받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의 회복으로 새 출발의 기회로 삼자며, '기술'이 아닌 '근본'을 가르치는 예술과 교육으로 뉴노멀(New Normal)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K-클래식 성역화 △풍류학교 K-Conservatory △바람결 오케스트라 K-Orchestra 활성화 △비르투오소(Virtuoso) 대상(大賞) △해외 네트워크 플랫폼 구축 △창조적인 오피니언들의 살롱 콘서트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해외 명예감독들을 초청해 국제교류를 본격화하기로 하는 한편, 그의 실행을 위해 매달 모임을 정례화 할 것을 다짐했다.   문화저널21 마진우 기자
이세훈 2021-04-22
270
썸네일
[소설 최치원 ②] 제1권 성인과의 만남. [편집자 주] 지난 2월 최치원 장편소설 5권이 발간되어 화제다. 소설 최치원은 30년 연구를 바탕으로 한 최진호 작가의 상상력과 뛰어난 문장력 등으로 그 시대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서 긴장감 속에 단숨에 읽혀지게 만들고 있다. 또한 책 곳곳에 방랑 식객 임지호 화백이 뿜어내는 최치원 정신을 형상화한 그림 삽입으로 묘미와 영감을 더해주고 있다. 최치원의 평화, 애민, 개혁사상은 현세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이 최치원 알리기의 등불이 되길 기대하면서, 본지는 6회에 걸쳐 책의 주요내용들을 소개한다.   고운 최치원 선생 후손이 펼쳐낸 전무후무 장편소설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 최진호 작가가 30여 년 동안 국내·외에 산재한 최치원 관련 자료 및 흔적 등을 총체적으로 수집·분석·연구하여 (장편)소설 ‘최치원’ 전5권을 지난 2월 출간했다. 총 1,600여 쪽에 이르는 가히 기념비적인 역작으로서 전무후무한 ‘최치원 장편소설(실록)’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선 이 책은 전래 또는 현전(現傳)하는 각종 사료들을 바탕으로 개혁적, 지성적인 목민관(정치인)으로서의 삶, 유·불·선에 더하여 풍류도까지 설파한 (종교)철학자 및 대문호로서의 각종 업적과, 더 나아가 따스하고 다정다감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세련된 필치로 정갈하게 묘사함으로서 신비의 성에 갇혀 있던 그의 진면목을 새롭게 조명해 최치원 연구의 새로운 단초를 선사하고 있다.   이 소설이 우리들을 더욱 감동시키는 것은 견훤, 왕건, 궁예, 도선국사, 최승우, 최언위 등 신라 말에서 후삼국을 거쳐 고려개국까지의 급변상황을 인물중심으로 실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더하여 밀리엄 수녀와 아랍인 파루즈 왕자가 최치원과 같이 귀국하여 서라벌에 교회를 짓고 경교 전파 사실 등을 고증하였다는 점이다.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한 감동적인 상황이다. 이 소설이 널리 애독되어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의 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시대 격변의 역사를 회고·조응함으로서 역사 재인식의 계기가 되길 염원한다.   ▲ 최치원 제1권 성인과의 만남 최치원 제1권 성인과의 만남   차례   추천의 글 / 작가의 글 최치원의 행적도 / 등장인물   번개  쌍가락지  동남풍을 타다  황제의 도시  신비한 산(종남산)  고란초의 비밀  국자감  어사화를 꽂다  십팔 세의 진사  백거이白居易를 만나다  신선들이 머무는 곳   책 속에서   최치원은 31세 때 지은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서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출신국에 따라 차이가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고 설파하였다. 이 여덟 글자야말로 최치원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는데 열쇠가 된다. ‘도’道와 ‘인’人, 이것은 최치원의 평생에 걸친 화두다. (6p)   최치원 선생은 자기 한 사람의 부귀공명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중앙정부의 현직顯職을 사양하고 지금의 함양군에 내려가 주민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해마다 범람하는 강줄기를 바로잡고 지리산에서 캐온 나무를 심어 대관림(현재 상림숲)이라고 하는 인공조림장을 조성하였습니다. 천 년이 넘은 지금도 현지에 가면 상림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그 숲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었으며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하였던 학자이며 또한 끈기 있게 창의와 개혁을 주장한 실천가였습니다. (16p)   “저 흑구렁이는 뭐야? 탑신에 숨어 있다가 벼락을 맞은 거 아니야? 아이고 징그러워!” 여인들의 소란스러움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웅성웅성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를 지켜 본 상좌승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신도들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상좌승의 기세에 눌린 신도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녀린 숨소리만 뱉어 낼 따름이었다. “신도 여러분, 오늘 보신 일에 대해서 말씀을 삼가해 주세요. 궂은 날 벼락이 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고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벼락 소리에 놀란 구렁이가 잠시 혼절했을 것입니다. 별일 아니니까, 이제 다들 돌아가세요.” (34p)   고산 훈장은 이런 치원을 바라보며 매우 흐뭇해했다. 치원이 살짝 몸서리를 치며 술잔을 모두 비우고 나서 다시 잔을 훈장님께 드리자 술잔을 받아든 훈장님은 치원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네 아버지에게는 다 말해 두었다만 당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 당나라에 지금 네 나이에 가는 것이 왜 좋은지 아느냐? 당나라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은 열네 살이면 들어갈 수가 있어. 지금 네가 열두 살이니까 가서 한 2년 정도 그 나라 말을 더욱더 익히며 공부를 한 뒤, 열네 살에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국자감 시험이 그리 만만치 않단다. 삼사三史, 오경五經,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통달해야 겨우 합격을 기대해 볼 수가 있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시험관 앞에서 구두시험을 통과하려면 당나라 말도 유창하게 익혀야 한단다...”(46p)                    ▲ ‘최치원 깨달음의 시작’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1권 113p) “여름이 지나기 전에 떠나도록 해. 우리 6두품은 당나라 유학을 다녀오지 않으면 달리 방도가 없어. 진골 발뒤꿈치라도 잡고 뛰려면 당나라 유학을 다녀와야 해.” 견일은 몇 올 남지 않은 수염을 매만지며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그런데 현준대사, 저렇게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났다가 당나라가 좋아 아주 거기 눌러 앉거나 당나라 처자를 얻어 아주 서화자西化者(당의 국적을 얻어 눌러 앉는 사람들)가 되면 어찌할꼬?”   반야 부인의 억지스러움에 현준스님은 그저 웃음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도 참, 어머님을 저리도 따르는 치원이가 서화자가 되겠습니까? 어머님 뵙고 싶어서라도 동귀자東歸者(본국으로 돌아오는 사람)가 될 겁니다. 그 점은 염려 놓으세요.” 그제야 반야 부인은 조금 안심하는 눈치였다. 가만히 누워서 이 이야기를 듣던 치원은 공연히 서러운 생각이 들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손등으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외쳤다. (81p)   막 서른 살이 된 최견일이 반야 부인을 만나게 된 인연은 부여의 고란사 불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따스한 봄의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고, 백마강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강바람이 뭇 사내와 처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오전 내내 잠시라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온몸이 땀으로 뒤덮인 견일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요사채의 부엌에서 한 여인이 나와 다른 여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견일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132p)   치원에게 이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깨어보니 꿈에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현실처럼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이롭게 할 수 있는 학문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국자감 도서실에 가서 공자 맹자의 인의예지 사상, 노자 장자의 자연 도리에 복종하는 도덕의 무위사상, 한비자의 법치주의 사상, 중국 옛 선현들이 남겨놓은 사상과 학문뿐만 아니라 서역학자들이 주장한 학문 서적까지 모두 공부하였다. 공부는 스스로 깨우쳐야 된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중심의 자리에서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믿어야 되는 것을 내 스스로 알아야 된다. 상대방이 잘못되고 틀린 것이 있더라도 틀린 것과 잘못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공부이다. (185p)   그날 밤, 치원은 모처럼 시원한 샘물로 몸을 씻으며 묵은 상념까지 모조리 털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현준스님과 찻상에 마주 앉아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그 향기에 흠뻑 젖어들며 그간의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웬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잠시 후 뜻밖에도 최승우가 방문을 열며 들어섰다.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군요! 종남산에서 몇 년 전에 뵙고 서라벌에서도 먼발치로 만났었죠?” 현준스님이 일어서며 최승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랬었나요? 이 사람은 취생몽사하는 사람이라 기억력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242p)   “장원 급제를 하셨으면 그대로 벼슬길로 나가시지 뭣 하러 이 깊은 산속까지 들어오셨나? 이거 원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아이고, 진사 어르신 풍채가 훤하십니다.” 선사는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여유 있게 농을 던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치원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삼배를 올렸다. 현준스님과 호몽도 그 뒤에서 역시 삼배를 올렸다. (286p)   최치원 진사 계십니까? 최치원 진사님, 어디 계세요?” 무척이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여기 있소. 뉘시오?” 치원이 사내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치원의 목소리를 들은 사내가 말에서 내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잘 찾아왔군요. 예부에서 나왔습니다. 최치원 진사님의 발령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깊은 산중에 계십니까?” 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치원에게 발령장을 전했다. 치원은 짙은 어둠 속에서 호몽이 들고 있는 횃불에 의지한 채 사내가 주고 간 발령장을 펼쳐 들었다. (300p)  (계속)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1
269
썸네일
[소설 최치원 ①] ‘시대가 최치원을 부른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최치원 장편소설 5권이 발간되어 화제다. 소설 최치원은 30년 연구를 바탕으로 한 최진호 작가의 상상력과 뛰어난 문장력 등으로 그 시대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서 긴장감 속에 단숨에 읽혀지게 만들고 있다. 또한 책 곳곳에 방랑 식객 임지호 화백이 뿜어내는 최치원 정신을 형상화한 그림 삽입으로 묘미와 영감을 더해주고 있다. 최치원의 평화, 애민, 개혁사상은 현세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이 최치원 알리기의 등불이 되길 기대하면서, 본지는 6회에 걸쳐 책의 주요내용들을 소개한다.   ▲ 소설 최치원(전5권) 이 시대가 최치원을 부르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자유스럽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태평성대 시대를 추구하기 위하여 한평생 ‘말과 행동이 초지일관된 삶’의 실천으로 95세까지 신선처럼 살다간 학자이며 탁월한 지도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쓴 최진호의 장편소설 △최치원 1 성인과의 만남'△최치원 2 통찰의 지혜 △최치원 3 꿈꾸는 별 △최치원 4 하늘의 비밀 △최치원 5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지난 2월 출간되어 화제를 뿌리고 있다.    당나라에 유학하면서 당나라의 몰락을 목도하고 새로운 세상의 태동기를 예감한 최치원. 골품제 나라인 신라에 시무십조(時務十條)를 조정에 올리나 그 실현을 보지 못했고, 백성들에게 그의 철학과 사상을 널리 전파시키고 신화처럼 사라진 그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제시한다.   ▲ 최치원 행적도(소설 최치원 제1권 19〜20p)   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노력해온 최치원의 삶을 그리다!   이 책은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대하역사장편소설로 펼쳐진다. 최치원의 평화주의와 애국애민사상 중 시무십조 사법개혁은 지금도 절실한 내용이다. 최진호 작가는 30년 동안 최치원을 연구하고 유적지를 답사해 소설화했다.   최치원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친 경우는 아직 없다. 최치원의 삶을 다룬 전기도 없고 평전도 없고 소설도 찾기 힘들다. 제대로 된 전기가 없으니 평전이 나올 리 없다. 전기와 평전이 없는 상태에서 소설이 나온다 한들 작가의 상상력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최치원의 일생이 소설로 엮어지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작가 최진호의 장편소설 '최치원(전5권)'이 그것이다. 시대가 최치원을 부른다는 말이 겉치레가 아님을 입증이라도 해 주는 것 같았다. 사료 고증을 통해 제한적으로 엿볼 수밖에 없었던 최치원의 일생이 최진호 작가의 30년 연구에 더해 추리력과 상상력에 힘입어 생동감 있게, 사실감 있게 소설화되었다. 실타래같이 얽히고설킨 당시의 시대배경을 종횡무진 서술하면서도 작가 나름의 역사관을 통해 헝클어지지 않게 풀어냈다. 최치원의 복잡다단한 생애 역시 실마리를 잘 풀어내고 마디를 잘 지어가면서,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변화가 많지만 하나로 꿰어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데 특성이 있다고 보겠다.   신라에서 건너간 18세 소년이 당나라 희종 황제의 어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후 당나라에서 관리가 된 20세의 젊은 최치원은 지금의 남경 근처인 율수현 임지에 근무하면서 당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해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두 자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써주었을 만큼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에게 더욱더 잘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얼마 후 당나라가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는 붓 한 자루를 들고 적장 황소에게 부당함을 지적하여 끝내 그를 패퇴시킨 공로를 당 조정에서도 높이 평가하였고, 황제는 자금어대를 하사하면서 언제 어느 때나 황제 알현을 허락하였다.   고국 신라에 돌아와서는 왕족과 호족이 발호하여 백성을 착취하며 기근 속에서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신라 말기의 조정을 향하여 일대개혁을 촉구하였다. 지금 정확하게 전해 내려오진 않지만 시무십조라는 열 가지 개혁안을 제시하며 기득권층에게 자기혁신을 끊임없이 권고하였다.   그는 유교와 경전에 통달하여 공맹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유교라는 한정된 경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불교의 고승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고승들을 기리는 비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사찰을 위해서도 불후의 명문장을 손수 써주었다. 그가 남긴 깊은 산 속의 4개의 비문은 ‘사산비명’이라 하여 천 년을 견뎌왔지만 그 내용이 지극히 어려워 천 년 동안이나 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역사소설에서는 사실과 상상력의 구분이 애매하다. 일정하게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역사소설이라 하기 어렵고 상상력이 없으면 굳이 소설이라 할 이유가 없다. 이 소설에서도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진성여왕이 사석에서 최치원을 ‘오라버니’라 부르고 평소에 연정(戀情)을 품었다고 고백한 것을 누가 사실로 곧이듣겠는가? 또 어렸을 때 공부했던 서당 훈장의 딸 보리(菩提)가 역모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도교 수련을 하던 동문들과 구출대를 조직, 신라로 잠입하여 보리를 구출한 것이라든지, 구출된 보리가 종남산(終南山) 자오곡(子午谷)과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를 오가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나중에 복수의 칼날을 마음속에 품고 후백제 견훤(甄萱)의 부인이 된 것은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해도 좋다.    독자가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치원의 정신세계다. 소설이기에 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작가의 역량에 따라 ‘은근한 외침’, ‘다정한 유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작가는 전반적으로 최치원의 애국심,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사회 통합을 ‘시대적 화두’로 제시하였다.   최치원이 훌륭한 사상가이었음은 그가 유교나 불교 그리고 도교에 통달해 있어 삼교회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 가지 사상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에 하나를 더한 것, 즉 우주질서와 하나로 통하는 풍류도를 스스로 창안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이국이민(利國利民)의 경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한 가지 도(道)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출신성분이나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인무이국(人無異國)’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 남겼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시주석은 뜻밖에도 최치원이 쓴 ‘범해(泛海)’라는 시로 말문을 열었다. 한·중 간의 교류는 이미 천 년도 넘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아득한 시기에도 젊은이들은 바다를 건너 교류하였으며 서로의 국익을 위해 경쟁했을 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삼국지나 세계 위인전을 읽기 전에 1,100여 년 전의 시공 속에서도 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최치원 1, 2, 3, 4, 5권’을 읽어 얻은 지식을 통해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함은 물론 창조의 힘을 갖추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 최치원의 ‘인재 발탁과 인사 혁신’ 이념을 이미지(형상)화시킨 임지호 화백 그림(소설 최치원 제1권 220〜221p)   최치원 1, 2, 3, 4, 5권 소설에는 대사상가이자 대정치가이기도 한 최치원을 비롯해 헌강왕, 진성여왕, 김가기, 최승우, 최언위, 궁예, 견훤, 왕건, 도선국사, 선종과 당나라의 고병 장군, 고운, 배찬, 두순학, 황소, 왕선지 등 역사상 흥미로운 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또는 앞날에 있어서도, 나라에 바른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제도와 정신이 문제라는 점을 역사와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최치원을 소설로 읽는 것은 곧 딱딱한 역사에 피를 돌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면서 우리 또한 역사 속으로 깊은 탐험을 가는 일이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최치원의 후예임을 이 소설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지은이 최진호는   지은이 최진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최치원의 사람 사랑과 나라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념(一念) 하나로 작가는 지난 30년 동안 유적지를 답사하고 연구한 자료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소설화 작업을 해 책으로 펴냈다.    ▲ 장편소설 ' 최치원'' 저자 최진호  ©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추천사   이 시대가 최치원을 부르고 있다! 최치원은 9~10세기를 사는 동안 동아시아지역의 다양성과 국제적 개방성을 공문서와 사적인 글들을 모아서 만든 ‘계원필경’을 비롯하여 ‘진감선사비문’ 등 사상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으로 드라마틱하게 집필하였으므로 그 시대의 삶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 ·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국에서의 유학과 문화 체험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였고, 신라가 중국의 주변국이 아니라 동아시아문명의 중심국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최치원은 동인의식(東人意識)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인류의 보편문화를 추구했던 21세기형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그가 남긴 문장의 향기에 취해 진면목을 보지 못하였다. 신비(神秘)를 벗겨야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는데도 신비의 성채를 쌓는 데만 열중하였다. 보호색을 지우고 배경색을 넣으니 이제야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새롭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최영성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 철학박사)   소설의 출간을 경하하며, 우리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문화국가 가치창조를 위해 최치원 선생의 평화주의 및 애국애민사상 중 시무십조 사법개혁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일독을 권합니다. (장석용 시인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장)   이 흐린 시대, 흐린 세상에 즈음하여 최진호 선생의 필력을 빌어 '최치원'이라는 작품 5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소설로 최치원을 읽는 재미를 저처럼 함께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필독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이외수 소설가)    최진호 장편소설 '최치원' 1권 성인과의 만남(300p). 2권 통찰의 지혜(296p). 3권 꿈꾸는 별(324p). 4권 하늘의 비밀(332p).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348p) / 도서출판 집사재 / 신국판(152×225) / 1쇄 발행일 2021년 02월 10일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21
268
썸네일
[인제내설악미술관] 풍경속 변화와 흐름展. 김창열·박종용·이광수 등 작가 12명의 각기 다른 창작세계   공립인제내설악미술관이 12명의 작가들이 50여점 이상의 평면대작을 선보이며 각기 다른 창작의 세계를 선보이는 ‘풍경속 변화와 흐름展’을 진행하고 있다.     ▲ (왼쪽부터) 김창열作 물방울 100X150cm oil on canvas / 박종용 作 결의 정물 162x130cm mixed media, on the canvas / 이광수 作 시뮬라크르 09-35 160x130cm oil on canvas (사진제공=인제내설악미술관) 자난 2일 개막돼 오는 6월 27까지 74일간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는 인제내설악미술관 소장품과 유명작가 12명의 작품으로 기획된 전시회다. 각기 다른 창작의 세계 안에 풍경 속 자연의 이미지를 시간의 변화와 사유의 기록으로 제시해 감상자에게 창조의 세계를 경험케 하고 명상과 상상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인체와 자연풍경의 이미지를 색으로 묘사한 강명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풍경속 이야기들로 마주해본 김영철 △기억 속에 자리한 풍경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메시지로 전달한 김종오 △자연풍경 이미지들을 특유의 묘사를 통해 극대화한 김종상 △물방울로 동화되는 자연풍경을 우주의 공간으로 여행하듯 묘사한 김창열 △자신의 사상과 관념의 세계를 내면의 풍경속 흐름들로 제시한 나정태 △자연과 우주의 시간속 풍경을 함축된 결로 묘사한 박종용 △자연이미지를 풍경의 변화와 흐름들로 선보인 이광수 △훈민정음과 보리밭의 풍경속 경험을 자연의 청량감으로 시각화한 이숙자 △풍경속 이미지의 변화현상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기하학적으로 표출한 전동화 △현실풍경을 재료 화된 현상의 변화들로 결합한 최미경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작은 변화들을 대상으로 의인화한 황영희의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가다리고 있다.   ▲ 인제내설악미술관 전경  © 박명섭 기자 인제내설악미술관 관계자는 “각기 다른 창작 동기들을 해석해보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풍경속 평화를 꿈꿔보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면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변화와 풍경 안에 내재된 이미지의 흐름을 일상의 풍경과 예술가들이 전하고자하는 내면의 이야기로 재현해냄으로써, 시·공간 속 자연의 변화에 대한 관조적 의미들을 환기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전시개요 • 전 시 명 : 기획전시 ‘풍경속 변화와 흐름展’ • 전시기간 : 2021.4.2(금) ~ 6.27(일) 매주월요일휴관 | 무료관람 • 참여작가 : 강명순, 김영철, 김종오, 김종상, 김창열, 나정태, 박종용, 이광수, 이숙자, 전동화, 최미경, 황영희 • 장    소 : 공립인제내설악미술관(1·2·3전시실) • 주    최 : 공립인제내설악미술관       • 후    원 : 인제군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1-04-16
267
썸네일
[현장탐방] 박종용 화백 ‘전용전시관’과 ‘화운당 아틀리에’.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모습 보여주기 위해 전용전시관 오픈   지난 14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소재 내설악백공미술관과 박종용 화백의 ‘화운당(花雲堂)’ 아틀리에를 다녀왔다. 지난해 11월 제1전용전시관(일생관) 오픈에 이어 20일 오픈 예정인 제2〜3전용전시관(‘결’ 전용전시관 및 ‘도자·조각’ 등, 입체작품 전시관과 그간의 작업상황 등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내설악백공미술관 1층에 위치한 박종용 화백 전용전시관은 모두 3개관으로서 제1전시관은 일생의 작품 전시를, 제2전시관은 ‘결’ 전용전시관, 제3전시관은 도자, 조각 등 입체작품 전용전시관으로 구성돼 있었고, 제1〜2전시관은 각 75평, 제3전시관은 10평의 면적이었다.   ▲ 내설악백공미술관 내 박종용 화백 제2전시관인 '결' 전용 전시관에 전시된 작품  © 박명섭 기자 전용 전시관 오픈과 관련해 박종용 화백은, “작년 11월 제1전시관(일생관)을 오픈하면서 올 봄 ‘결’ 전용전시관을 오픈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이번에 ‘결’ 전시관을 마련하면서 입체작품(도자·조각)전시관을 동시에 오픈하는 것이다. 전용전시관은 미술관 속의 또 다른 미술관으로서, ‘결’ 작품 관람문의가 쇄도하여 오픈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설악산 자락의 한적한 백공미술관의 기능강화라고도 할 수 있다”면서, 전용전시관 마련 취지 등을 설명했다.    제1전용전시관(일생의 작품)에는 수월관음도 등 불화작품 및 책가도, 백동자도 등 각종 민화작품과 산수화 등 20여점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제2전용전시관에는 ‘순정 결’ ‘색체 결’ ‘공전 결’ ‘결의 빛’ ‘인물 결’ ‘정물 결’ 등등 각종 ‘만유(萬有) 결’ 20여점이 환상적인 조화 속에 판타지아를 울리고 있었다. 입구  쪽 제3전시관에는 도예 및 조각 작품 60〜70점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전용전시관 운영 등과 관련하여 박종용 화백은 “불화, 민화, 영모화(호랑이 등), 인물화, 산수·정물화 등 보관 중인 작품들이 600∼700점에 이르고, 도자·조각 작품들도 부지기수이다. 더하여 ‘결’의 작품들은 향후 수없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연중 교체전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2층 전시관은 소장전, 기획(초대)전 등을 하면 되고…”라고 설명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와도 같은 백공미술관이 작가의 창의력으로 영감의 산실로 변신을 도모하다니 가슴이 찡했다.    ▲ 내설악백공미술관 내 박종용 화백 제1전시관인 일생관  © 박명섭 기자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박종용 화백의 삶은 고난의 천재작가에서 생명예술을 향해 구슬땀을 흘려가며 원로한 선원의 미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불꽃같은 삶이었다. 60여년 풍상이 그를 ‘전천후 예술가’ ‘예술의 연금술사’로 변모시켰지만, 섭리의 작용으로 추상표현주의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하여 세계의 하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만유(萬有)‘결’ 예술을 통해 세계인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에 따라 의미 부여가 다를 수 있지만, 박종용 화백에 있어 ‘결’은 우주의 본원으로서 삼라만상이다. 인간들이 밝혀내고자 하는 궁극의 원리인 삼라만상의 이치를 ‘결’로서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즉, 삼라만상의 이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결’의 예술로 표현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결’은 박종용 예술의 총괄 결산표로서, 쇠보다도 더 강인한 예술의지 등에 비춰 앞으로 향후 수많은 ‘결’의 예술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에 ‘결’의 전용전시관을 오픈하여 연중 교체전시하면서 미술관의 기능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향후계획 등과 관련, “저는 영원한 작가다. 작가가 창작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큰 계획은 없다”면서 “저는 수시로 ‘영겁의 세월 속에 찰 라의 이승에서 살아간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 나의 흔적은 작품이다. 이를 위해 생명을 불태울 것이다. 작품하다 죽는 것이 소망이다’라는 말을 읊조리곤 한다. 이는 명작창작에 대한 갈망이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사 희로애락을 멀리하면서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험난했던 인생 역정과 관련해 “60여년 풍상의 작가생활을 하면서 겪은 아픔과 파란은 수권의 책으로 발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눈물서린 인생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알고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사실 작가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고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 끝임 없이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하면 반드시 빛을 발할 것이라는 미의 진실을 믿고, 예술을 벗 삼아 세상사 곁눈질 하지 않고 고난의 세월을 이겨온 것이다.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다”라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 내설악백공미술관 내 박종용 화백 제3전시관에 전시된 달항아리  © 박명섭 기자   또한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예술외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 같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치열한 예술 혼을 불태워야 한다.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전용전시관을 오픈한 것”이라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아틀리에와 전용 전시장이 세계인 박종용 탄생 산실이 될 것을 염원    이렇게 전용전시관(제1∼3관)을 둘러보면서 몇 가지 대화를 나눈 후 미술관 부지 귀퉁이에 있는 하얀 목조건물의 화실 '화운당아틀리에'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작업장과 작품 및 각종 재료들로 꽉차있는 3개의 방의 모습은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했다. 방 3개에 있는 그림들을 세어보니 대충 60점 내외였고, 그것도 대다수 100∼400호의 대작들이었다. 20호 내외의 작은 작품들은 불과 몇 점 정도에 불과했다. 미술관 전용전시장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20여점을 합해 무려 80여점이다. 그것도 10여점을 제외하고 전부 대작들이었다.   이 많은 대작들을 대체 언제 완성했냐고 묻자 작가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매일 18시간정도 작업하여 5개월 만에 이정도 작업을 소화했다. 식사시간 및 5시간 정도 취침시간 외는 18시간정도 작업만 했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수 만점의 점을 찍어야 하고, 특히 몇 번 말리면서 찍고 또 찍어야하는 하는 힘든 과정인데, 5개월 만에 어떻게 대작 80여점을 창작해 낼 수 있었을까. 이정도 공력이 들어가는 힘든 작업이면 대작 80여점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 이상 소요된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기자는 박종용 화백의 창작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이같은 설명이 사실임을 잘 알고 있다.   ▲ 박종용 화백의 아틀리에 '화운당' 내부  © 박명섭 기자   작업과정에 대해 박종용 화백은,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기 때부터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초긴장 속에서 100호, 200호, 500호의 작품 80여점을 창작했다. 하루 5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매일 초죽음 상태로 작업했다. 작품들의 재료가 고령토이고, 작품마다 1만점 이상의 점들을 정교하게 찍어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공력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늦은 가을에 대형전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작품들을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안고 작업을 했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 것이라 할 수 있다”면서 지난한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이쯤 되면 거의 짐승 같은 생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사를 멀리하며  고독한 작업실에서 신들린 사람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종일 내내 땅방울을 흘려가며 붓질하는 모습은 넘어 雪嶽道人(설악도인)을 연상시키는 기인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외로 간단했다. “저는 운명적 예술가로 작품 활동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성공은 지난한 일이다. 특히, 한국적 상황은 예술계에서도 학벌 등 끼리끼리의 인맥 등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작가의 세계는 스승도 제자도 없고 독창적인 작품만이 전부다. 끝임 없이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하면 반드시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작품 활동 외 모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인생은 유한하고 예술은 영원하다. 유한한 인생에서 그마나 작품을 통해서라도 삶의 흔적들을 남기기 위해 세상사를 멀리하면서 이토록 몸부림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삶이 다하는 날까지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내설악 백공미술관 전경  © 박명섭 기자 무릇, 세계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이는 모든 예술가들이 풀어내야 할 궁극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이의 실현을 위해 예술에의 순교를 다짐하면서 처절한 예술의 노예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치열하게 예술 혼을 불태울 것을 다짐하는 결연(決然)한 자기선언을 하면서, 미래가 기억할 작가를 향해 생의 종점까지 치열하게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박종용 화백은 고비 고비마다 천부적 재능을 표출하면서 불모의 땅을 헤쳐 왔다. ‘순정 결’에서 시작된 결들의 향연은 ‘색체 결’ ‘공전 결’ ‘결의 빛’ ‘인물 결’ ‘정물 결’ 등등 각종 ‘만유(萬有) 결’로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주의 본원을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향후 그의 예술이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어디까지 도달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인 박종용 등장이 예감되는 상황이다.   더하여 박종용 예술의 전진기지인 백공미술관 (전용)전시관이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활성화 되어 갈지 또 다른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박종용 화백은 ‘화운당아틀리에’에서 신화창조를 향한 열정으로 백발을 휘날리면서 구슬땀을 흘리며 창작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은 그의 전용전시장을 통해 냉엄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아틀리에와 전용전시장은 화살과 화살통처럼 운명적 관계다. 아틀리에와 전시장이 세계인 박종용 탄생의 산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더욱 정진해 광대무변한 화엄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길 염원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16
266
썸네일
박종용 화백, ‘결’예술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박종용 화백은 2004년 새로운 추상예술의 창작을 결심한 후, 10여년 각고의 노력 끝에 창작된 작품들이 2019년 1월 예술의 전당, 3월 춘천KBS방송총국 등에서 ‘결의 향연’으로 전시되어 열풍을 불러일으켜 해외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더욱 다채로운 ‘결’들이 탄생되는 등, 그의 ‘결’ 예술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의 ‘결’예술이 흘러가는 방향 등을 살펴본다.      박종용 예술의 지향점은 우주의 궁극을 풀어내는‘만유(萬有)의 결’   박종용 화백은 8살 때(1960∼ )부터 스케치를 시작하여 일시도 붓을 놓은 적이 없는 운명적 작가다. 60여년 풍상의 세월동안 역사의 공포와 인간의 붕괴 및 애환 등을 수없이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미의 진실을 믿고 예술에의 순교를 다짐하면서 2004년 새로운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시작하여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2019년 1월 예술의 전당 등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열풍을 일으켰다.   ▲ 박종용 作 무제(결) 91.0×73.0cm Mixed media(석채 등) 2020  © 문화저널21 DB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박종용 화백은 오랜 기간 가족들의 생계유지 등을 위해, 민화, 불화, 도자, 조각 등 닥치는 대로 작업했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재료들을 다재다능하게 다루는 ‘예술의 연금술사’, ‘전천후 예술가’예술가로 자리매김하였다. 눈물겨운 삶의 역경 등이 예술의 자양분 구실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예시에 따라 2004년부터 추상예술을 시작하여 10년 이상 각고의 노력을 다한 끝에 2015년 겨울부터 심도 깊은 ‘결’의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2019년의 각종 전시회 등에서 호평 받아 해외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새로운 작가인생을 결심하면서 다시 구슬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결’은 ‘순정 결’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시작하여 1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심도 깊은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고, 이런 과정에서 창작된 수 백점의 작품들은 미술관 창고 등에 잠들어 있다. ‘결’의 전시회에 세계가 주목함에 따라 그의 ‘결’로 예술은 오방색을 위주로 하는 ‘색채 결’로 발전하였고, 다시 ‘공전(운행) 결’ ‘결의 빛(빛 결) ‘근원(환상·원상)결’ ‘인물 결’ 등등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그의 ‘결’ 예술들은 시시각각 유동하면서 진화해나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여름부터 창작되기 시작한 ‘결의 빛’(일명 ‘빛 결’)은 경계를 넘어가는 박종용 추상예술(일명 ‘결’)의 정수(精髓)로 평가하여도 과함이 없다. 2004년부터 ‘결’의 창작을 시작하면서 ‘영원히 빛날 생명예술을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이를 ‘빛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결의 빛’ 창작으로 풀어낸 것이다. 각가지 실험과 관찰 등을 통해 빛의 강약 및 굴절 등에 따른 ‘결의 빛’을 찾아낸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 염원을 실현한 것이다.   ▲ 박종용 作 무제(결) 130.0×162.0cm Mixed media(석채 등) 2020   © 문화저널21 DB ‘결의 빛’ 창작을 전후하여 ‘결’들의 작품들은 더욱 다양하게 변용되기 시작했다. ‘순정(純正) 결’에서 시작된 ‘결’들은 ‘색채 결’을 이끌어 냈고, ‘결의 빛’ 창작과 더불어 우주의 돌고 도는 운행을 의미하는 각종 ‘공전(空轉) 결(일명 운행 결)’들을 탄생시키면서 만유(萬有)의 세계를 향하기 시작했다. 더하여 각종 ‘결’들은 수렴과 확산을 거듭하면서 오묘한 화음을 울리면서 광휘를 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절대예술의 새로운 경지가 서서히 열려가고 있다. ‘결의 빛’은 박종용 예술의 새로운 지평개척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박종용 화백은, “나의 추상표현주의 예술이 향후 세계예술계 등지에서 어떻게 평가를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절로 긴장되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되는 예술계의 생리를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세계)예술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길은 유례없는 독창적 작품뿐이다. 창조(창작)라 함은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롭게)탄생시킨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면 세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창작해 낼 수 있을지가 전부였다. 생명예술을 갈망하면서 새로운 ‘결’ 예술을 시작하였고, 가슴 속에 품은 오랜 염원이 꿈으로 나타나 ‘결의 빛’ 창작을 이끈 것이다. 이때부터 다양한 ‘결’의 작품들이 (저절로)탄생되었다”면서, ‘결’의 변화과정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결’이란 사전적 의미로 나무나 돌, 살갗 등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말한다. ‘결’은 세상 만물이 태어나 오랜 시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결과로 그 물체의 역사 자체이며, 세상의 만물은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결’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결’은 박종용 화백에 있어서는 우주의 본원인 것이다. 즉, 삼라만상이다.   박종용 화백의 예술관은 평범하다. "...(중략)작품들은 생명의 떡잎처럼 생동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명상과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색의 공간 등을 제공하여 영감의 갈증을 해소시켜야 하고, 나아가 작가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사유하는 모든 것을 간결하게 담아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한다. ‘만유 결’을 통해 이러한 바람(철학)느껴질 수 있길 염원한다." 그의 작가노트에 있는 말이다.    ▲ 박종용 作 ‘결’의 정물 145.5×112.1cm Mixed media(석채 등) 2021  © 문화저널21 DB 그는 운명전환의 또 다른 길목에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일화와 ‘지성이면 감천이다’는 속담을 되새기면서 생의 종점까지 고요와 폭풍이 몰아치는 각양각색의 ‘만유(萬有)결’의 창작을 위해 몸부림 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더하여 세계예술사에 유례없는 작품들로서 (세계적으로)평가받고 싶은 욕망을 불태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감동을 불러일으켜야만 한다. 이는 그의 ‘결’예술이 풀어내야 할 궁극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은 명상과 창조의 미학_ 세계적 평가를 위한 치열한 정진 당부    살펴본 바와 같이, 박종용 화백은 2004년부터 시작된 그의 새로운 추상표현주의 예술(일명 ‘결’)은 10여년 각고의 노력 끝에 심도 있는 작품들을 탄생시켜 2019년의 각종 전시에서 호평을 받아 해외에서 손짓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세계적 평가를 갈망하면서 다양한 ‘만유(萬有) 결’ 창작에 육신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 평가는 그리 만만한 상황만은 아니고 아직은 어둠이 짙은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화를 향한 박 화백의 ‘만유(萬有) 결’ 예술들은 발아하기 시작한 상태일 뿐이다. 첩첩산중의 험난한 앞날이 예상된다.   그의 고백처럼 (세계)예술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길은 유례없는 독창적 작품뿐이다. 그것도 기존 예술품들에서 볼 수 있는 화면들의 변용이나 차용 등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자신만의 선명한 작품(독창)성과 영감(감동)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창작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세계예술사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작해 감동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박종용 예술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 앞에 그의 영감과 의지 등이 새삼 주목되어지는 상황이다.   박종용 화백은 끼리끼리의 연결고리 등이 지배하는 한국미술계에서 특이하면서도 예외적인 존재이며, 열정의 예술인이다. 60년 예술인생에서 모든 재료들을 다재다능하게 다루는 세련된 기교와 놀라운 공력 등은 다채로운 작품들을 통해 증명된 상황이다. 더하여 새로운 추상미술을 시작하여 10여 년의 노력 끝에 심도 깊은 작품들을 탄생시켜 세계가 손짓하게 만들면서 예술에의 정열과 의지를 증명했다. 이 점에서 그의 예술적 장래는 기대되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현대미술재료로 잘 사용되지 않는 고령토 등 특이재료를 사용하여 작품마다 1만점 이상의 점을 찍어나가면서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비상한 의지와 체력 등이 요구되어진다. 과연 어느 누가 이토록 힘들여 작업을 한단 말인가? 배금주의(拜金主義)에 물든 경박한 풍조에 경종을 울릴만한 의미 있는 행위로서, 예술가의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진정한 예술인이다.   ▲ 박종용 作 ‘결’의 인물 100.0×80.3cm Mixed media(석채 등) 2021   © 문화저널21 DB ‘만유(萬有)의 결’을 창작 등과 관련하여 박종용 화백은 “더는 해매지 말고 ‘결’의 작품에 인생종지부를 찍어라’는 명령의 소리가 쟁쟁히 들려오고 있다”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어찌 보면 남은 인생은 이를 위한 노예 같은 삶에 비유 되어질 수도 있다. 세계 예술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각양각색의 수많은 ‘결’들의 창작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운명이라면 이를 어찌 피할 것인가!   이렇게 창작된 그의 작품(‘결’)들은 자연과 사물의 본질(사물의 본성)을 꿰뚫으면서 천지의 기운(음양오행)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절대주의의 회화처럼 시·공간의 뛰어넘어 ‘순정 결’, ‘색채 결’ ‘공전(운행) 결’ ‘결의 빛(빛 결)’ ‘근원(환상·원상)결’ ‘인물·정물 결’ 등등 ‘만유(萬有)의 종합(결)’을 형상화 시켜가면서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는 더욱 심오한 명상과 창조의 미학을 드러내고 있다. 우주의 본질을 노래하는 ‘만유(萬有)결’은 생명체로서 영혼의 프리즘인 것이다.   이렇듯 각양각색의 ‘결’ 작품들은 절대공간과 상대공간 속에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우주(사물의 근원)를 향하여 수렴과 확장을 거듭하는 박종용 화백의 ‘결’들의 향연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맞닿아 있는 시공간(무극-절대공간)의 여행(명상)으로서, 우주의 본원에 육박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박종용 화백은 수시로 “영겁의 세월 속에 찰 라의 이승에서 살아간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 나의 흔적은 작품이다. 이를 위해 생명을 불태울 것이다. 작품하다 죽는 것이 소망이다”면서, 자신의 운명(사명)을 강조했다. 그의 소망대로 세계적 위업(평가)을 기대하면서, 이를 위한 치열한 정진을 당부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13
265
썸네일
박종용 화백, ‘일생관’ 및 ‘만유결’전용 전시관 개관. 화운당 박종용 화백이 오는 20일 일생관 및 ‘만유(萬有)의 결’ 전용 전시관을 오픈한다. 작년 11월 제1전시관(일생의 작품 전시관) 오픈에 더하여 ‘결 전시관’(제2전시관)과 도자·조각 전시관(제3전시관)을 오픈함으로서 60여년 작품세계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평가받으면서 세계로 웅비하기 위한 전진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결’ 전시관은 2019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하여 ‘만유 결’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결’의 연작들을 체제적으로 관람하게 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박종용 예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결 전용 전시관’마련은 신천지 개척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   ▲ 제1전시관(일생관) 내부전경  © 문화저널21 DB 박종용 화백은 지난 해 11월 내설악백공미술에 제1전시관(일생의 작품)을 오픈하면서, 자신의 작품들이 언론보도 및 유튜브 등을 통해 널리 전파됨에 따라 일생의 작품들과 ‘결’의 연작들을 체계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 등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명년 봄 제2전시관(‘결’들의 향연) 오픈 예정임을 알리면서, 전용전시관 마련을 계기로 자신의 예술이 더욱 알려지기를 희망했다(본지 2020. 11. 11. 자 기사 참조).   이에 오는 20일 내설악백공미술관 1층 오른쪽 제1전시관(일생의 작품) 맞은편 75평에 ‘결의 전시관(제2전시관)’을 오픈하며, 더하여 입구 10여 평 홀에 ‘도자 및 조각 전시관(제3전시관)’ 등을 마련하여 동시에 오픈한다. 도자, 조각을 포함한 박종용 화백 일생의 작품들과 다채로운 ‘만유(萬有)결’을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특별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박종용 화백 일생예술의 조망과 광대무변한 ‘결’의 향연 등을 감상할 수 있는 특이한 케이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결 전용 전시관(제2전시관)’ 내부 전경  © 문화저널21 DB   지난 해 11월 오픈한 제1관(일생관)에는 최고(最古)의 작품인 16세 때 그린 묵란도를 비롯하여 박종용 화백이 보관 중인 수월관음도 등 각종 불화, 책가도, 평생도, 백동자도, 풍속도 등 각종 민화류와 인물화 및 산수와, 호랑이, 정물 화 등등 일생의 작품 600〜700여점이 순차적으로 (교체)전시되고 있다. 그의 일생 작품들을 본 관람객들은 ‘말문이 막힐 뿐’이라고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제1관(일생관)에 전시되어 있던 박종용 예술사에 특이(희귀)한 돌조각, 등잔대, 탈조각, 목불조각 및 각종 도예작품 등 각종 입체작품들은 이번에 오픈하는 입구 쪽의 입체작품 전용전시관인 제3전시관 등에 이동 배치(전시)된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제2전시관인 ‘결의 (전용)전시관’에 모아진다. 박종용 화백은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이상 설악산 ‘화운당아틀리에’ 틀어박혀 다채로운 ‘결’의 창작을 위해서 구슬땀을 흘렸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선보여질 것인가?   ▲ '결 전용 전시관(제2전시관)’ 내부 전경  © 문화저널21 DB   이와 관련하여 박종용 화백은,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그야말로 초긴장의 상황에서 100호, 200호, 500호 등등의 작품 40여점을 창작했다. 하루 3∼4시간 정도의 잠을 자면서 매일 초죽음 상태로 작업을 했다. 재료가 특이한 고령토이고, 작품마다 1만점 이상의 점들을 정교하게 찍어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공력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늦은 가을 대형전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작품들을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안고 작업했다.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 것이다”면서 치열한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더하여, “이렇게 창작된 작업들은 ‘순정 결’ ‘색채 결’ ‘결의 빛’ ‘운행(회전) 결’ ‘인물 결’ ‘정물 결’ 등등,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표현했다. ‘만유(萬有) 결’ 창작을 위해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는 새로운 경지 개척을 위해 ‘인물 결’ ‘정물 결’ 등등도 창작했다”면서 끝없는 도전의 열정 등을 설명했다.   ▲ 제3전시관(도자·조각 등 입체작품 전시관)에 전시된 도자작품들  © 문화저널21 DB   또한, “‘결’은 우주의 본원이며 삼라만상으로서 삼라(우주)의 근원을 ‘결’로 풀어내어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서, 자신이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를 선보이기 위한 전시관 마련의 의미 등을 설명했다.   박종용 화백은 그간 죽음보다 더 한 고통들을 강인한 의지로 이겨내면서 자기예술을 개화시켜 나가고 있는 천성의 작가다. ‘그야말로 늪 속에서 피어나는 ‘강인한 (예술)인동초(忍冬草)’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의 (전용)전시관’ 마련은 신천지 개척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으로 보여 진다. 이를 계기로 그의 예술이 국내·외에 본격적으로 알려질 전망이며, 향후의 (예술적)위업이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다. 세계로 비상하려는 그의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한 땀과 눈물로 얼룩진 더욱 치열한 정진을 당부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이세훈 2021-04-13
264
썸네일
김충환 헌정회 사무총장, "의미있는 역할 할 것". 국민의 뜻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역할 할 것  기업, 민간단체의 해외 국회의원 및 정부 접촉 돕겠다   김충환 신임 헌정회 사무총장은 헌정회가 국민의 뜻이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것이며 기업이나 민간단체의 해외진출 및 교류와 관련 해당국가의 국회의원이나 정부 인사를 접촉하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제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사무총장은 지난 3월 26일 헌정회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본지는 7일, 신임 김 사무총장으로부터 헌정회의 향후 운영방안에 대해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 김충환 대한민국헌정회 사무총장 (사진=문화저널21 DB ) 김 사무총장은 취임소감을 묻자 “헌정회는 국회의원출신 정치인들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단체”라며 “이 곳에서 원로 정치인들을 모시게 돼서 기쁘게 생각하며 헌정회가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은 물론, 국민들의 뜻을 정치에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여야를 망라한 국회의원 출신 회원님들의 모임인 헌정회에서 봉사를 하게 돼 뜻 깊게 생각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잘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당리당략이 아닌 국가의 공동목표를 위해서 일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바라는 바에 대한 질문에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시대에 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가운데서도 각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경쟁이 심하다”면서 “당도 중요하지만 국가공동의 목표, 또 장기적인 국가 미래에 대한 대안, 정책적인 방향에 신경을 쓰면서 경쟁과 동시에 화합하는 그런 정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정치가 되도록 노력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신임 사무총장으로서 포부를 말해달라는 요청에 “헌정회가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의 제도적인 정치발전의 주역들이 모여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분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존경심이 일어날 수 있도록 헌정회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되겠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나라의 헌정회와 교류 협력을 통해서 우리나라 기업인들이나 민간단체들이 다른 나라 국회의원이나 정부와 접촉이 쉽도록 연결망을 만들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생활이 어려운 헌정회 회원들을 위한 복지문제도 제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동안 활동해 오던 평화통일연구원의 활동에 대해 “현재 남북관계가 경직돼 있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회원들은 꾸준히 동북아평화와 한반도통일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통일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충환 사무총장은 1954년 경북 봉화 출신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시의회 의원, 강동구청장(3선)을 거쳐 제17대 18대 국회의원, 제18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송파구갑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회 상근 부위원장, 평화통일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동해왔다.    한편, 대한민국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로 이루어진 단체로 현역 국회의원도 준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며 준회원 포함 회원은 약 1300여명, 순수 전직 국회의원은 1150여명 이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1-04-12
263
썸네일
[워크숍]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1 신임 임원 위촉 및 사업보고.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1 제1차 임원 워크숍 개최   한국경제문화연구원(회장 최세진, 이하 경문연)이 2021년 제1차 임원워크숍을 열고 10여명의 연구자문위원과 각 분과위원장 등 신임 임원을 위촉했다.    ▲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미래로 룸에서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1 제1차 임원 워크숍’이 개최됐다. (사진제공=한국경제문화연구원)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미래로 룸에서 ‘경문연 2021 제1차 임원 워크숍’이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서는 신임 임원 상견례 및 임원 위촉장 수여와 2020년 사업보고 및 2021년 사업계획 발표와 참석자들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최세진 경문연 회장은 “2021년에는 학술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할 예정” 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히든챔피언을 발굴해 강소기업으로의 도약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새롭게 위촉된 임원은 ■상임고문 이주영(전 국회부의장) ■연구자문위원 △강철규(전 공정거래위원장) △조병선(중견기업연구원장) △김규환(국가품질명장, 전 국회의원) △임웅균(성악가,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무총장 이세훈(문화저널21 ICT전문기자) ■분과위원장 △경제정책연구위원장 정석균(한양대 교수) △글로벌비즈니스위원장 이강래(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 △법률자문위원장 박희승(법무법인 호민 대표변호사) △상생협력위원장 김승호(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문화예술진흥위원장 오은경(성악가, 세종대 교수) △스마트융합산업위원장 조영득(주식회사 씨와이 대표) △창의인재개발위원장 최경국(명지대 교수) △남북교류위원장 송금호(작가, 대북사업가) △콘텐츠개발위원회 이선경(명지대 교수) △민족정기선양사업 특별위원장 탁계석(한국예술비평가회장) 등이다.    한편, 경문연은 산업통상자원부 등록 비영리 민간단체로 지난 2009년 발족한 ‘한국문화예술포럼’과 2012년 발족한 선인사회문화연구원을 통합해 2013년 새롭게 출범했다. 그동안 △최고경영자 심포지엄 및 포럼 개최 △글로벌 비즈니스매칭 △해외교류 △융복합 콘텐츠 개발 △한국경제문화대상 시상 등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MASTER 2021-03-19
262
썸네일
[위촉]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 경문연 상임고문 위촉.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1 신임 임원 위촉 및 사업보고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미래로룸에서 열린 ‘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21 제1차 임원 워크숍’에서 상임고문으로 위촉된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이 위촉장을 받은 후 기념촬영 하고 있다.   ▲ (왼쪽부터)최세진 한국경제문화연구원 회장, 이주영 상임고문  © 박명섭 기자   한국경제문화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 등록 비영리 민간단체로 △최고경영자 심포지엄 및 포럼 개최 △글로벌 비즈니스매칭 △해외교류 △융복합 콘텐츠 개발 △한국경제문화대상 시상 등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이세훈 2021-03-19

등록

  1. 1
  2. 2
  3. 3
  4. 4
  5. 5
  6. 6
  7. 7
  8. 8
  9. 9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