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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준 칼럼] 코로나 이후 뉴 노멀⑤....소통의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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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22

 

소통의 마음가짐,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정보대칭시대 적응을 위한 해법

 

최근 들어 ‘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더 대두되고 있다. 다가온 정보대칭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변화는 대중이 각자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고 각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 특성은 곧 소통의 필요성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지난 2천 년간 자신의 독점된 정보를 가르치거나 가르침을 받는데만 익숙해져 왔다. 맹자의 왕도정치나 플라톤의 철인정치부터 시작해 공교육과 대학교육은 대표적인 가르치는 시스템이었으며, 우리는 높은 수준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영웅이나, 유명 대학의 교수, 정치인, 스승, 성직자, 전문직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겨왔다. 조조의 리더십이니 카리스마 리더십, 정주영 리더십 등 영웅이나 강력한 리더의 가르침으로 세상이 발전되고 운영되는 구조이다보니 그간 사회조직은 물론 교육시스템, 종교단체 심지어 집안에서까지 가부장적인 운영시스템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러나 통신네트워크와 더불어 인류사회의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정보가 보편화되고 공유된다. 이제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강요로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내가 낳은 자녀마저도 일방적 강요는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소통’이 필요하다. 

 

새로이 열리는 ‘정보대칭시대’에는 ‘소통’에 대한 명확한 정명(正名)이 필요하다. 우리는 소통이 안되는 사람이 타자와 대화를 하지 않거나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에 앞서 소통이 불통인 사람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그들이 왜 대화에 익숙하지 않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이유를 알아야 새로운 시대 필요한 ‘소통’방정식의 윤곽이 나올법하다. 

 

불통인 이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기 텍스트(생각, 고집, 원칙, 신념)가 강한 사람이다. 자신들이 배우고 경험한 텍스트를 타인에게 강요한다. 자신이 본 것, 자신이 들은 것만 믿는다. 따라서 자신의 경험이나 정보만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유형이다. 좋고 나쁨(Good or Bad)을 삶의 기준으로만 보면서 살기에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주로 설(opinion, 說)에 빠져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 지식을 타인에게 강요한다. 자기 맘대로 사는 것처럼 보여 ‘성인아이’라고도 한다. 자기 생각이 곧 사회적 상식이라는 망상으로 내로남불(我是他非,아시타비)의 원형이 된다. 지나치게 자기 텍스트가 강한 사람을 철이 없다고 하거나 더 심하면 싸이코패스(psycho-path)라 한다. 소통에 담 쌓은 사람들이다. 

 

둘째, 사회적 기준이 강한 사람이다. 팩트체크, 진실의 맞음과 틀림(True of False)에 빠져 공통된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정한 사회적 기준은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자기 삶에 근거를 제공한다. 자신의 주관적 텍스트가 있기보다는 사회적 전통에 의지하고, 사회적 규범을 중시한다. 형식과 예의를 강조하면서 억지로 자기견해를 강요한다는 의미로 억견(臆見,DOXA)에 빠진 사람이다. 변화에 무감각하며 혁신에 강한 거부감을 가져 새로운 세상에서 소통을 거부하고 과거의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꼰대라고 불린다. “남에게 사기 당하느니 내가 먼저 사기치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으로 사회적 기준을 따르겠지만 자신은 절대 피해나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이중적 마음가짐이 깔려있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사회적 기준이 강한 사람을 이코노패스(econo-path)라 한다.

 

셋째, 이념이나 신념이 강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이념이나 신념이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이다. 비전, 목적이 다르기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 아니 소통할 의지가 없다. 옳고 그름(Right or Wrong)이 철저한 삶의 기준이 되어 상대나 상대의 텍스트를 선과 악의 기준으로 본다. 삶의 기준이 경(經, Testament)이 되기에 타협이 불가능한 사람의 유형이다. 사회적 정의나 종교적 신념, 이데올로기적 이념에 의한 불통의 유형이다. 그들에게 있어 다른 생각을 갖는 상대는 악마가 되거나 믿음 없는 사람이 된다. 지나친 자기 이념과 신념에 빠져 타자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소시오패스(sociopath)라 한다. 

 

결국 불통은 자신이 갖고 있는 텍스트의 세 가지 유형인 감성적 기준(Good or Bad), 지성적 기준(True or False), 이성적 기준(Right or False)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과 습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기준은 매우 불명확하고 불안정하다. 기계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며, 문화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 심지어 환경이 달라지거나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기준으로 대화를 하면 오히려 싸우기만 한다. 상대를 비난하고 자신을 무시했다고 곡해한다. 상대가 갖고 있는 기준은 틀렸고 내 기준만이 맞는다는 자세는 나이로, 경력으로, 전문성으로, 학력으로, 경험에 의해 정보독점의 우위에 있었던 ‘정보비대칭사회’의 폐단이다. 이 폐단이 지난 2천 년 간 흘러왔다. 

 

그러나 정보대칭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불통의 사고를 고집하는 이들은 자녀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배우자로부터 무시당하고,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게 된다. 내 머릿속이 우주면 다른 이의 머릿속도 우주다. 상대와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꼰대로 외롭게 살게 될 것이다. 안중근의사의 친필 중 하나인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를 소개한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의 뜻을 되새기며 정보대칭사회의 소통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 누림경제발전연구원 제공

 

박항준 세한대 교수 
현 누림경제발전연구원 원장

현 중기부 액셀러레이터 (주)하이퍼텍스트메이커스 대표이사 

현 (사)한국블럭체인기업진흥협회 상임부회장

현 (사)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부회장

현 (사)시카프(sicaf) 집행위원장

전 한국통신산업개발 상무보

전 시티신문사 대표이사 

 

 

KECI | 2021.01.22 20:55 | 조회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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