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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계석칼럼] 예술 모국어(母國語) 법의 발의(發議)를 준비하면서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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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활성화가 대안

기독교 합창과 불교계의 마찰이 점입가경이다. 몇 달 전 부산 시립합창단에서 촉발된 기독교 찬양, 레퍼토리 편향성 문제가 국립합창단을 비롯해 전국의 합창단에 불이 옮겨 붙을 태세다. 국립합창단 윤의중 예술감독에 대해 신상 털이 수준의 비난을 접한 합창계가 불끈하고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이러다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처럼 종교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 국립합창단 제공


타이밍을 놓치면 높은 사다리 소방차가 무용지물

 

얼마 전엔 합창 쪽에선 영상 좌담회도 했고, 박범훈(불교), 이영조(기독교) 원로 작곡가들과의 만남도 있었다. 가볍게 봐서는 안 될 문제란 데 의견이 일치했다. 때문에 면피성이거나 땜질 처방이 아닌 근원적인 해법(解法)을 내놓아야 한다. 합창 뿌리가 서양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원론적 이야기보다는 설득력 있는 대안(代案)이 그래서 필요하다. 깐족깐족 어설픈 논쟁하다가 싸움이 커지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고, 들불이 산불이 되듯 확산되면 합창단에도 직격탄이 날아 갈수 있고, 불교계가 찬송가 빌려 쓰는 것에도 불똥이 튄다. 이래저래 국민 눈엔 망신살만 뻗친다.

 

아티스트는 세계적인데 정책과 시스템은 노후 장비

 

눈을 크게, 더 멀리, 시선을 높이 두어야 한다. 문명사의 변화와 펜데믹 이후의 인류의 양식(糧食)이 될 만한 것들을 내놓아야 하는 천운(天運)이 도래했다. 우리에겐 충분한 예술능력과 인력풀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그 역량이 기생충. 미나리, BTS, 오징어 게임, 쇼팽 콩쿠르, 부조니 1.2등 세계 콩쿠르의 60% 이상을 석권하는 나라가 되었다. 밖에서의 코리아와 정작 진원지인 한국 안에서의 온도차가 너무 크다. 스스로의 당당함과 자긍심을 세우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일까? 오랜 문화사대주의, 흉내 내기, 규제와 통제를 살아왔던 자율성의 미흡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 몇 백 년 전, 고전 기독교 합창 레퍼토리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논쟁을 할 때가 아닌 것이다. 어느 쪽, 어디서든, 편가름은 소모전이고 사회성장에 보탬이 안된다. 기독교든 불교든 급속하게 변하는 새로운 문화에 눈을 떠야 한다. 지난 7월 UN 무역회의가 대한민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선포했다. 바야흐로 문화도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베푸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비전과 도약의 주도권을 갖는 뉴 노멀(New Normal)을 통해 제도 개선과 인식 의 틀을 바꿀 때가 온 것이다.

 

유인택 사장의 ‘가곡 드라마’ 가 어떻게 풀려갈 것인가

 

우리 작품의 수준과 연주를 대폭 늘려 기독교 작품의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이 당장 필요하다. 창작이 주류(主流)를 이루는 게 해법이라고 본다. 여기에 한국 영화의 영광을 가져온 쿼트제 도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예술 모국어(母國語)법의 제정은 늦었지만 절묘한 타이밍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기금지원 기관의 어마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곡’은 잊혀져가고 있다. 잘못하면 고시조나 정가(正歌)가 될지 모른다. 근자에 예술의전당 유인택사장이 가곡을 화두(話頭)로 잡고 드라마 가곡 등으로 풀어 가면서 일말의 희망을 걸어 본다.

 

한 때의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말, 우리 정서, 우리 노래가 불려 지지 않고 세대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는 근본 문제에 종합처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학의 가곡 학점화가 되어야 예술가곡이 발전하는데, 대학이 직무 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유학파 시절의 영광에 묻혀 우리 가곡을 폄훼하고, 가르칠 메소드를 개발하지 못한 체, 작품이 어떻고 하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성악가가 자기가 부를 노래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다 보니 동호인 가곡에 끌려가면서 겪는 고초를 맛보지 않았는가.

 

▲ K-classic 제공

 

쿼트제 도입이 작품 완성도. 시장의 변화, 레퍼토리 상설화를 만든다

 

따라서 각종 콩쿠르에 우리 작품을 의무화하고, 극장 대관은 물론 교, 강사 임용 및 평가에 서 적용한다면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K-POP과 방탄이 깔아 놓은 한류에 우리 의 작품성이 빛을 발한다면 예술의 세계사 편입이란 새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리다. 혼돈의 시대. 균형, 조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 합창, 불교음악, 창작음악을 1/3씩 고루 배치하고, 특히 3,1절, 8.15의 국경일 등에는 모국어 공연을 의무화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국민 정서에도 부응하는 것이고 관객 개발에도 보탬이 된다.

 

그러나 예산의 뒷받침이 없이는 공염불이다. 그래서 법제화로 가야 한다. 누구를? 어디를? 탓할 시간이 없다. 기술력과 콘텐츠가 만나서 융합하면서 한 차원 높은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연주 질 따지고, 음악가 양성을 제일로 하던 대학 중심시대는 분명히 지났다. 유학가지 않고서도 세계 정상에 서는 것이 흔해진 만큼 우리의 독자적 문화로 세계와 어깨를 겨루어야 한다.

 

중세에 전염병이 창궐해 인구의 1/3을 잃고서 르네상스가 왔듯이, 이번 코로나19의 고통은 우리들에게 삶과 문화를 새롭게 자각하게 할 것이다. 창조적인 예술과 예술가의 생존력을 회복하면서 종교에도 공존(共存)의 새 문법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

 

탁계석 예술비평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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