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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신세계를 향하여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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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은 민족주의 작곡가 ’스메타나‘의 제자로서 대표작품인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의 작곡자이기도 합니다.

 

이 곡의 정식 제목은 ‘Symphony No.9 in E-minor, Op.95’로, 1892년 도미(渡美) 후 작곡한 첫 작품이며 교향곡으로는 총 9개 중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을 ‘신세계로부터’라고 부르게 된 것은 작곡자인 드보르작이 이 이름을 직접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따라 이 곡의 제목을 달리 부르고 싶습니다.

 

‘신세계로부터’가 아니라 ‘신세계를 향하여’라고.....

 

이렇듯 드보르작을 이야기할 때면 한 가지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릅니다.

 

필자가 과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대한민국 음악제’라는 명칭의 연례적인 국제 음악제를 담당하던 무렵, 1981년도 음악제는 전두환 대통령 취임 축전(祝典)으로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공연 당일 문화공보부의 어느 지체 높은 분(?)으로부터 필자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공연에 VIP가 참석하신다고 청와대에서 작곡자와 곡명을 알려달라는데… 지금 옆 전화를 끊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으니 곧 좀 불러주시오”라고 하기에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입니다”라고 했더니 즉시 복창(復唱)이나 하듯 보고하는데, 그 내용이 퍽 가관(可觀)이었습니다.

 

“아, 예~ ‘드보르 작곡,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랍니다”

 

아마도 그분은 ‘드보르작’을 ‘드보르 작곡’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드보르작은 ‘꿈속의 고향’이라는 노래를 통해 초등학생도 아는 이름인데…

 

각설(却說)하고, 앞서 필자가 이 작품의 제목을 오늘따라 ‘신세계를 향하여’로 부르고 싶다고 한 것은 바로 내일(10일) 열리는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기점(起點)으로 이 나라가 ‘신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신세계로부터’의 작곡자인 드보르작의 이름도 모르는 관리(官吏)들의 주도(主導) 하(下)에서는 ‘신세계를 향하여’ 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매 악장마다의 주제에 대한 소감을 간략하게 피력(披瀝)하고 이 위대한 음악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들으며 취임식에 대한 축하와 신세계를 향한 기대의 마음을 갖고자 합니다.

 

〈제1악장〉 우리 이제 떠납시다!

 

당시 드보르작이 본 미국은 거대한 신대륙이긴 하지만 아직 신세계에는 이르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들이 바라는 신세계를 향하여 반드시 그 자리를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제 외형적으로 비대해진 대한민국도 진정한 의미의 신세계를 향하여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요?

 

자, 우리 이제 갑시다. 여기를 떠납시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철조망에 살갗 찢기 울지라도 가야 한다는 그 세찬 몸부림을 보여줍시다.

 

한참이나 우린 갔습니다. 철조망을 넘다 걸려 몇몇 사람이 함께 오지 못했던 불행한 기억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곁에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어느 아이가 우리 중 몸집이 큰 한 어른에게 묻습니다.

 

“대체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거에요?”

 

그 몸집 큰 어른은 나지막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신세계로 가는 거란다!”

 

〈제2악장〉 꿈속의 고향

 

흰 목화밭에는 검은 피부를 가진 노예들이 목화송이를 따며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열악(劣惡)한 조건을 감내(堪耐)하고 있었고,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총소리에 놀라 그들이 쳐 놓은 천막들을 걷고 어디론가 흩어져 피난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석양이 드리우자 흑인들은 줄지어 집으로 향하며 그들의 영가(靈歌)인 ‘스윙 로우, 스윗 채리엇’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Swing low, Sweet chariot

(낮게 흔들리는 기분좋은 꽃마차)

 

Coming for to carry me home

(어서 와서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오)

  

대표적 흑인영가인 이 노래는 원래 흑인 노예들이 장례식 때 부르는 작가 미상의 슬픈 곡조입니다. 여기서 ‘채리엇(Chariot)’은 원래 2륜(輪) 수레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는 구약성경 열왕기하 2장 11절에 기록된 대로, 선지자 ‘엘리야’가 죽지 않고 산 채로 승천할 때 타고 간 ‘불수레(A chariot of fire)’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평생을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던 흑인 노예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고 바로 하늘나라에 올라가고픈 애처로운 신앙적 희망이 깃들어 있는 노래입니다.

 

이 흑인영가는 현대 미국 음악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이는 드보르작으로 하여금 ‘신세계로부터’라는 위대한 교향곡을 만들어 내게 했습니다.

 

“만일 미국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런 교향곡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작곡자 자신의 고백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교향곡 중 제2악장 전체를 통해 감미롭게 흐르는 주제 선율을 발췌하여 드보르작의 제자인 ‘윌리엄 피셔’가 ‘고잉 홈’이라는 제목과 가사를 붙여 편곡한 것을 우리도 ‘꿈속의 고향’이라고 번역해서 애창하고 있습니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쫓아서 즐거웠건만

 

꿈속에 그 려라 그리운 고향

 

〈제3악장〉 고잉 홈 (Going Home)

 

‘가자! 우리들의 고향, 정든 언덕의 품속으로 돌아가자’

 

드보르작은 그들에게 가야 할 목적지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제 환희의 세상이 열립니다. 평화를 알리는 대포 소리가 울리고 인간 해방의 메시지가 미국 전역을 뒤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목화밭에서는 이제 더 이상 음울한 영탄조(詠嘆調)의 영가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 대신 힘찬 노동가가 울려나고 있었습니다.

 

〈제4악장〉 신세계 (New World)

 

그들은 드디어 신세계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염원하던 ‘신세계를 향하여’ 그들은 활기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4악장에 들어서면 미국 전역을 휩싸고 돌았던 프론티어 정신과 청교도 정신이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 그 기세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진실, 즉 공정과 정의와 상식이 되고 맙니다. 그러한 기조(基調) 속에서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각국에서 모인 인종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민화합을 이룸으로 마침내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일구어냅니다.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함께 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정치인들의 언어인 여야(與野)를 떠나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그리고 대한민국이 맞이할 신세계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작은 음악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당시 독일의 3류 교향악단이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반열에 올려놓은 20세기 대표적인 거장(巨匠) ‘세르쥬 첼리비다케’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소개합니다. 볼륨을 한껏 높이고 들으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링크 :   https://youtu.be/489z8Xb5T_8

 

민족 정서를 보편적 음악 언어로 표현하는 세련된 유럽 작곡가 드보르작에 관한 소문은 미국에까지 퍼졌습니다. 결국 그는 '자네트 서버' 여사의 제안으로 1892년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되어 3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게 됩니다.

 

드보르작이 뉴욕에 발을 디딘 1892년 무렵, 미국은 이렇다 할 음악적 전통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조지 거쉰’이나 ‘아론 코플랜드’ 같은 미국 작곡가도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드보르작을 초빙한 것은 미국 클래식 음악의 시조가 되어 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1893년 12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카네기홀에서 초연된 이 작품이 미국 음악계를 뒤흔드는 대성공을 거두자 당시 뉴욕 언론은 “드디어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출현했다”, “이는 젊은 미국의 진취적 기상을 드러낸 미국 음악의 출생증명서”라는 극찬을 쏟아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언론의 반응에 드보르작은 단호히 말했습니다.

 

"나는 미국의 그 어떤 선율도 나의 교향곡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흑인 음악의 특성과 인디언의 분위기를 리듬, 화성, 대위법 그리고 현대 관현악법에 맞추어 발전시켰을 뿐이다. 이는 모두 체코 음악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 음악의 아버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이는 역시 민족주의 음악가 스메타나의 제자다운 애국적 발언이라 여겨집니다.

 

한 곡의 교향악 작품 안에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이렇게도 많은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교향곡을 들으며 왠지 모르게 한국 전통음악의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 국악의 선법(旋法)과 같은 5음계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적 민요 《아리랑》도 5음계를 사용한 음악입니다.

 

(참고로, 서양의 음악은 7음계 [도,레,미,파,쏠,라,시]이고 우리 국악은 5음계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이다)

 

글 말미(末尾)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나라가 신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원동력은 정치인에게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가 본연의 일에 충실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음악인들도 무슨 협회나 연합회 등의 명의로 가상(假象)의 인원(人員)을 날조(捏造)하여, 사익(私益)을 위해 특정 정치권력에 대한 지지 시위를 벌인다거나, 클래식이든 팝이든 앞에 ‘K’자를 붙여 사적(私的) 점유(占有)에만 급급하기보다는 우리 음악을 세계화할 수 있는 인재 양성과 국위 선양을 위한 노력이 시급한 때 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4차산업 시대의 주역인 예술산업 활성화로 음악계 복지에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더도 말고 우리 음악계에도 ‘드보르(?)‘ 같은 똘똘한 작곡가 한 사람만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강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외부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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