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공지사항

[김유혁 칼럼] 국난사충신(國難思忠臣)

MASTER

view : 295

2014. 05. 16

 

▲ 김유혁  전 금강대 총장

옛날 말에 이르기를, 가정의 살림형편이 곤란하게 되어갈 수록 선량한 아내를 생각하게 되고, 나라의 사정이 어려워져갈 수록 충성스러운 신하를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를 하나의 글귀로 이야기 할 때에는 가빈사양처하고 국난사충신(家貧思良妻 國難思忠臣)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꼭 짚고 가야할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충(忠)이라는 개념에 관해서이다. 일반적인 경우 경례구호처럼 경례 할 때마다 한 마디 외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 이냥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다.

천자문에서는 충즉진명(忠則盡命)이라 했다. 즉, 충성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도 나라에 바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중용에서는 일중심(一中心)이라 하여 어떤 경우에도 유일한 중심거점에 자리하고 있는 한 결 같은 마음을 일그러트려서는 안 된다는 그 마음 지킴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현대표현식 설명으로는, 충이란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스스로의 인간적 성실성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알기 쉬운 현대적 표현을 바탕으로 하여 음미해볼 때, 충(忠)은 첫째, 자아의식이 분명해야 하고, 둘째는 주체적 가치지양성이 뚜렷해야하며, 셋째는 그 자아성과 가치지향성이 사회적 공관성(synoptic-view)과 부합해야 한다.

나라가 어렵게 되었을 때 충신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책임을 맡고 있는 각자의 입장에서 자아의 소임을 다할 줄 알고, 맡은 바 사안(事案)을 능란하게 관리하며, 적확한 상황판단 아래 보다 큰 가치구현을 위해 진취의욕을 발휘하며, 아울러 모두와 더불어 일심협력하는 풍토를 조성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왜냐하면 충직한 사람의 경우는 어떤 상황 하에서도 앞에서 말한바 있는 그 3가지 요소를 멀리 하거나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어려울 때마다 그런 유형의 인물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작금의 사태는 모두가 나라의 형편을 어렵게 몰고 가는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일례를 든다면 서해연안의 교전사태와 천안함 폭침 사건 및 목하의 새월호(世越號) 침몰사건 등이 그것이다.

특히 세월호 침몰사건은 지역단위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만큼 마음 아파해야 했던 사건이다. 사건발생 한 달이 돼가는 현제까지도 사건수습이 마무리 되지 않고 있거니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그 사건의 진모를 알고 있는 정도만큼의 수준에서조차 대응하기 위한 국민적 각성이 미흡하다는 것을 스스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간 사건상보(事件詳報)를 통하여 거의 정밀하고도 자세한 뉴스를 자초지종까지 전부 전해 들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을 요하지 않을 만큼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린 학생들이 꽃봉우리도 터트리기 전에 변난을 당했다는 점에 대해서 미음 아파하다가 꼭 챙겨야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여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바 두려움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참고로 몇 마디 적어두고자 한다.

첫째는 떠나간 영령을 향하는 애도에 묻혀 있다가 우리는 700여명의 잠수사(潛水士)들이 사력을 다하여 모진 파도와 싸우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분들을 위로하고 고무 격려하는 마음의 여유를 별로 지니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 분들은 단 한 구라도 더 빨리 인양하기 위하여 산 목숨을 바치고 있으며 이미 2사람이 생명을 잃었고 여러 명이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 간 바 있다. 장차 유사한 사고재발방지를 위해서도 그분들의 역할이 크게 기대 되고 있는데 더 이상 관심을 노아서는 안 될 것이다. 순직자(殉職者) 두 분에 대한 장례식은 이미 거행했지만 앞으로도 구조 활동 중 희생된 분들에 대한 응분의 예우와 명예도 지켜줘야 할 것이다.

둘째는 사회적 기회를 삥땅치려는 파렴치한 자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족을 가장하여 사회적인 자기표출을 시도하거나, 유족구호(救護)를 빙자하여 사기행각도 불사하는 망국종자들이 암약하는 사례가 있는가하면, 사실보도로서는 일호의 가치도 없는 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보도영향력을 과시하여 사건수습을 도리어 어렵게, 그리고 지연시키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철면피들의 발호는 반드시 사회적 응징이 뒤 따라야 할 것이다. 검증 없는 부실보도와 나만이 앞서가고 있다는 오만하고 허구적인 경쟁보도는 스스로 준엄한 사회적 책임을 질 줄 아는 언론 도의의 풍토가 높아져가야 할 것이다.

셋째는 누구보다도 대통령께서는 불철주야 노심초사 중에 있음을 온 국민들이 알고 있는 데 위문 객을 위장 동원했다느니, 허언을 했으니 벼락 맞을 것이라느니, 진정성이 없다느니, 국민 앞에 석고대죄 올리라느니 하는 철부지의 짓 같은 비속어와 날조어로 사회정서와 여론을 어지럽히는 자들도 있다.

그 중에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도 끼어있으니 과연 그들이 이른바 선량인지 의문스럽기 이를 데 없다. 더 큰 의문은 그들에게도 뿌리가 있고 뼈대가 있는 집안의 후예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보학(譜學)상의 근원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십수소지(十手所指)의 국민적 지탄을 보내야 마땅할 것이다. 악성 루머를, 어지러운 틈을 타서 살포하거나 전파하는 밤 쥐처럼 나대는, 그런 부류는 전염병 세균을 퍼트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박멸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당인이든, 정치성향을 띤 사회단체성원이던 그 모두가 해악분자이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맹자(孟子)도 일직이 말하기를, 생도살인 불원살(生道殺人 不怨殺)이라 했다. 그것은 사회적 해악(害惡)을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해악을 만들어내는 부류를 영원히 없앤다 해도 원망하는 이 없다는 뜻이다. 법이 허락하는 제재범위를 넓혀서라도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넷째는 원시안적(遠視眼的)이며 거시안적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는 서해에서 제해권(制海權)을 가지고 중국대륙까지 상륙하여 무역시장을 개척한 바 있는 장보고의 후예인 우리가 연안일대의 바다 길 조차 살필 줄 몰라서 그토록 참혹한 사고를 냈다는 것은 역사 앞에서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전역사상 유례가 없는 승전보의 주인공 이순신장군의 명성이 잠겨있는 서 남해 일대의 자랑스러운 해역에서 통상적인 변화의 주기(週期)를 띄고 움직이는 해류의 상황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참변을 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순신 장군 후예답지 못하다는 수치를 우리는 저지르고 말았다는 국제적인 지탄을 면할 길이 없다. 우리 겨레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반드시 유서 깊은 조상님들의 혼기(魂氣)가 숨 쉬고 있다. 그것은 곧 역사가 도사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역사 앞에서 등을 돌렸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조상의 얼이 묻혀있는 옛 삶터에서조차 물리적으로, 양심적으로, 사상적으로, 정서적으로, 민속적으로, 풍토적으로 견디기 괴로운 저항을 받고 있다. 이는 제해력(制海力)이 무력해진 우리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경고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미 사맹자(史盲者)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사체불구자(史體不具者)가 되고 있다는 뜻 이기기도 하다.

지금도 늦지 않다. 후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늦었다고 한탄한다면 그 시각부터 우리는 패배의 길로 추락하게 될 뿐이다. 패배의 길을 가다가 발길을 돌리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가다가 잘못 든 길임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정신을 차리면 된다.

그래서 역사교육은 언제나 멀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반도국가의 국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해안 일대를 역사교육의 영역개념으로 소화해야 한다. 특히 동해와 남해와 서해일대를 생활역사의 현장 개념으로 늘 학습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다는 그 간의 불찰이 우리 역사교육의 맹점이었음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장보고의 해상활동시기 보다도 약 반세기 늦은 북서구지방의 바이킹 시대의 유물인 바이킹 쉽(Viking-ship)은 그 원형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전해지고 있다. 그 배에 얽힌 모든 사실은 국민교육교재의 내용으로 수록되어 국민적 대 해양생활정서 속에 적나라하게 아로새겨져있다.

특히 노르웨이(Norway) 국토는 국토 총면적 중 산지면적이 93%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해양으로 뻗어나가는 국민적 기개를 함양하여 세계굴지의 상선단(商船團) 국가가 되기도 했었는가하면, 때로는 세계 5위권에 드는 포경국가(捕鯨國家)이기도 했었다. 그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바이킹의 목조선이다. 그 목조선은 지금까지도 역사를 증명하는 실증으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장보고의 배도. 이순신장군의 거북선도 그 조각 하나 남겨져 있지 않다. 아주 철저히 때려 부수고 만 것 같다.

볼거리가 없으니 역사현장에서 실감을 느낄 수 없었으며 실감을 느낄 수 없는 곳에서는 역사교육의 실효성을 기할 수 없다.

세월호의 해상참사는 생활현장에 관한 역사교육의 부재라는 데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른바 국난(國難)이라는 것은 국가의 존재적 기능이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난극복이라는 것은 국가의 존재적 기능의 완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의 완전성은 나라 위한 국민의 충성심을 전제로 한다. 그럼으로 나라 역사에 대한 공부분위기가 성숙함을 기할 수 있을 때 국가존립의 완전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역사교육은 그래서 언제나 필요한 것이다. 언제나 필요한 교육이기 때문에 우리 국토연안에 대한 해양역사 교육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생활의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대(帶)위에 펼쳐진다. 펼쳐진 그 사실이 정서(整序)되어 역사로 존재하고 아울러 역사로 기리 이어져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KECI | 2016.01.31 16:12 | 조회 5060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