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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혁 칼럼] 當死之民 (마땅히 죽어야 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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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1. 18.

 

▲ 김유혁 문화저널21 상임고문,  前 금강대 총장
 

전국시대 초기에 있어서 한비자(韓非子)의 이론은 대단히 설득력을 지니는 경세통론(警世通論)이라는 평을 받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진시황 치하에서 승상(丞相)을 지낸 이사(李斯)가 한비자의 이론을 표절해서 육국통합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는 한 가지 사례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한비자의 모국인 한(韓)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먼저 진(秦)나라에 의하여 정복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 주요 이유는 국토의 규모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진나라와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우선적 병합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국가관이 혼미했던 일부 정치인 및 관료들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자들과 어울리면서 국민들의 생활정서를 늘 불안정한 상태로 몰고 가는 경향이 짙었다. 한비자의 경세이론(警世理論)은 그러한 위기의식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이론 중에서도 특히 강도가 높은 것 중의 하나가 육반론(六反論)이 아닌가 싶다.

육반론이라는 것은 여섯 가지의 용서받을 수 없는 반국가적 반도의적 해국반륜(害國反倫)의 행위를 범하는 역반인(逆反人)들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시국이 어지러워지고, 나라의 사정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공공질서가 문란하여 사회적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상황이 되면 뜻하지 않을 만큼 많은 이단자(異端者)가 날뛰기 마련이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리들이 민심을 교란시켜가며 그들 나름의 새로운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 망동(妄動)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한비자는 당시 한(韓)나라의 실정을 비관한 나머지 육반론(六反論)을 공격적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당시의 한비자의 심정은 능히 이해할만하다.

한비자는 6가지 역반자 중에서 죽어야 마땅한 놈들이 있다는 것을 당사지민(當死之民)이라 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려움도 이겨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 한다. 그런 상황에 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고 어려움을 피해가느라 비굴하게 저만 살고자  하는 무리를 항배지민(降北之民)이라 했으며 이를 제1의 역반자(逆反者)라고 지탄했다.

제2의 역반자는 얄팍한 지식과 방술(方術)을 앞세워 법망(法網)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사법관(司法官)으로 하여금 법의 적용을 어렵게 만드는 자들을 말한다. 이를 난법지민(難法之民)이라고 지탄했다.

제3의 역반자는 나라의 형편이 어떻게 되던, 백성들의 삶이 어렵던 말 던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유흥과 식도락을 즐기면서 거들먹거리는 무리들을 말한다. 이를 모식지민(牟食之民)이라고 지탄했다.

제4의 역반자는 남의 지식을 도용하여 양민을 속이고 관리의 눈을 피하여 그릇된 짓을 마치 정당한 것처럼 위장해서 사기행위를 일삼는 무리들을 말한다. 이를 사위지민(詐僞之民)이라고 지탄하였다.

제5의 역반자는 일반 백성들이 소지하기 어려운 비수와 기타 무기류를 휴대하고 공공연하게 만행을 자행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약자를 돌보아준다는 구실을 내세워 죄 없는 사람도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주지 않으면 위협하고 구타하고 살상까지도 불사하는 공살(攻殺)의 폭도들을 말한다. 이를 폭오지민(暴傲之民)이라고 지탄하였다.

그리고 제6의 역반자는 가장 신랄하게 지탄했던 당사지민(當死之民)이다. 당사지민이라는 것은 죽어야 마땅한 놈이라는 뜻이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나라의 이름으로, 백성의 이름으로 죽일 놈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라의 기틀을 무너트리려하는 반역음모자, 국익(國益)과 민복(民福)을 해치기 위한 나쁜 짓을 일삼는 자, 양관양민(良官良民)을 이유 없이 음해하는 자들을 활용하여 국헌문란(國憲紊亂)과 정부전복을 꾀하기 위하여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간계(奸計)를 부리는 무리들을 숨겨주는 부류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마땅히 국민공동체로부터 제척(除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부류를 일컬어 활적익간지도(活賊匿姦之徒)라 한다. 그래서 그들을 당사지민(當死之民)이라 말했던 것이다.

한(韓)나라의 운명은 촌각을 다투고 있는 실정이며, 나라를 걱정하는 뜻있는 사람들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처해있는 국가안보의 내일이 한 치도 내다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그러한 나라의 위기를 틈타 해국행위(害國行爲)를 일삼는 자들을 용서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전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비자의 당사지민이라 했던 지탄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참고로 육사신(六邪臣:六賊)과 육역신(六逆臣)을 소개하고자 한다. 육사신은 정치적 관점에서 눈여겨봐야할 내용이며, 육역신은 도의적인 관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내용이다.

육사신(六邪臣)은,
  첫째, 구신(具臣)이다. 구신은 관료조직에 있어서 이른바 과잉 정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국록만을 축내면서도 지나치리만큼 권력을 남용하는 무리를 말한다.
  둘째는 영신(佞臣)이다. 영신은 망령된 행동을 일삼는 자를 말한다.
  셋째는 간신(姦臣)이다. 간신은 문자 그대로 간사한 무리다.
  넷째는 참신(讒臣)이다. 참신은 음모와 네가티브를 일삼는 자들이다.
  다섯째는 천신(賤臣)이다. 교양과 식견과 정체성이 결여된 무리들이다.
  여섯째는 망국신(亡國臣)이다.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무리들이다.

육역신(六逆臣)은,
  첫째, 천한 자가 무리지어 귀직에 있는 이를 모멸함을 말한다(賤妨貴 / 천방귀).
  둘째는 젊다는 이유로 노장을 능멸하는 짓을 일삼는 자들이다(少陵長 / 소능장).
  셋째는 먼데 있고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이간질 하는 자들이다(遠間親 / 원간친).
  넷째는 신세대와 구세대를 이간 질하는 무리들이다(新間舊 / 신간구). 
  다섯째는 소집단을 만들어 주변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짓이다(小加大 / 소가대).
  여섯째는 음사(淫邪)한 일을 만들어서 사회정의를 침해하는 자들이다(淫破義 / 음파의).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처해있는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선거에 있어서 승패 결과에 대한 깨끗이 승복을 하는 풍토를 성숙시켜가기 위한 지난날의 노력이 있었고 표본이 될 만한 사례도 있었지만, 이를 망각한 채 개표부정이니 하는, 이른바 어불성설의 루머를 퍼트리는 이도 없지 않다고 하거니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치졸한 짓이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있어서나 현재에 있어서 한비자의 고심은 사라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한비자와 같은 그런 이의 정신을 선양할 수 있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한다.  

 

KECI | 2016.01.31 14:46 | 조회 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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