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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선 칼럼] 2013년 경제성장 밑거름 중소·중견기업의 저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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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1. 07

 
▲ 조병선 교수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과)
癸巳年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동일한 장소에서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바라보는 햇살은 유난히도 이글거린다. 힘차게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의 희망을 빌어본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족의 건강과 화목이며 조국의 평화와 사랑하는 이웃들의 안정적인 삶이다. 나라 경제의 회복도 새해 아침에 빌어보는 소망 가운데 하나다. 필자의 관심분야인 중소·중견기업도 불황을 극복하고 세계시장을 향하여 힘차게 발돋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재정위기에 허덕이는 유로존, 그러나 독일은 다르다

중소·중견기업을 생각하노라니 지난해 여름 히든챔피언에 관한 연구를 위해 유럽 몇 나라를 방문했던 기억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EU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예외적으로 독일만은 2년 연속 유로존의 2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달성하고 20년 내 최저의 실업률을 시현하면서 최대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등 경제 강국으로서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 경제의 주역은 대기업이 아닌 ‘든든한 다수의 중소·중견기업에 해당하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독일 미텔슈탄트의 꽃은 ‘히든챔피언’이라고 불리는 강소기업이다. 독일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1~3위이고 연 매출액 10억 유로 이내에 드는 히든챔피언이 1,500개 정도가 있는데, 이 가운데 1,350여 개가 미텔슈탄트에 해당한다. 이들은 해당 사업 분야에서 독자적인 시장지배력과 교섭력을 행사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 변화를 리드하고, 대기업이 생산하는 조립 완성품의 품질과 기술력을 뒷받침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원천기술 개발의 핵심세력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독일 수출의 40%를 담당할 만큼 수출 주도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히든챔피언의 70%가 소도시 또는 지방에 분산되어 있는 관계로 지역발전 및 균형성장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 히든챔피언

필자는 독일의 대표적인 히든챔피언에 속하는 기업들을 방문하여 소유자 및 경영진들과의 면담 기회를 가졌는데, 이 가운데 몇 개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특수 의약 및 화학제품 분야의 히든챔피언인 머크(Merck)사의 사례다. 이 기업은 창업자의 13대 후손 120여명이 주식을 골고루 분산하여 소유하고 있는 345년 된 가족기업이다. 동사는 창업 이후 오랜 기간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존속해 올 수 있었던 원인을 ‘단기적인 이윤창출보다는 세대를 아우르는 장기적인 비즈니스’를 생각해 온 것에서 찾는다.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창업자 후손들의 남다른 청지기정신(Stewardship)도 필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머크家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회사의 수익은 회사에 남겨두며 원래 있던 자리로 환원한다’는 원칙을 통해 기업의 경제적·사회적 책임을 잘 감당해 왔으며, 자신들은 ‘투자자가 아닌 창업자’라는 정신으로 무장하고 필요한 때마다 가족 구성원이 보유하는 자원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제공해 왔다. 사업영역과 관련해서는 경쟁이 심한 분야는 피하고 틈새시장을 개척하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최고가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세계시장을 적극 개척해 왔다.

둘째는 뉴른베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Joh. Barth & Sohn 사의 경우이다. 1794년 설립되어 창업자의 8대 후손이 경영하는 가족기업인 동사는 맥주에 쓴맛을 내는 천연 원료인 홉을 생산 가공하여 공급하는 세계시장 점유율 30%의 히든챔피언이다.

이 기업은 사업영역을 확장하기보다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더 잘 해나간다’는 확고한 경영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제품과 가장 효과적인 홉 제품의 유통’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1970년대 초반부터 홉 아카데미를 운영해 오면서 홉과 기타 원부자재를 활용하여 보다 맛좋은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고객인 맥주 제조업체 기술자를 대상으로 교육·전수해오고 있다. 동사는 미국, 호주, 중국 등에 11개의 현지 법인 및 지사와 농장을 두고 그 대부분을 현지 인력이 경영하는 현지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현지 문화 및 관습의 극복이 용이하고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데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동사는 빠른 성장보다는 탄탄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중시하는 경영을 추진하면서 주주 배당을 최소화 하고 내부유보를 최대한 확대하는 방식으로 자기자본 충실화를 도모한다. 이러한 전략은 경기불황 등으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경우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부채를 줄이고 자본금을 늘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 역사를 통해 경험하였기 때문이며, 동사의 CEO는 이 기업이 장수기업으로 살아남게 된 가장 주된 요인으로 자기자본 충실화를 들고 있다. 

동사는 종업원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교육투자와 종업원 개인별 역량과 기대를 반영한 경력관리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직원들은 장기근무를 하고 있으며 이직률은 1% 미만으로 근로의 안정성과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업승계도 장기계획을 세워 철저하게 준비하여 안정적으로 추진한다. 유능한 후계자 양성을 중시하고 있는 동사는 후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관련 분야의 학업을 마치고 4개국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어야 하며, 5년간 다른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소정의 조건을 갖춘 후계자에 대하여는 1년간 그룹에 소속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사들에서 업무경험을 쌓게 한 후, 입사하여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일반 직원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근무를 하게 한 다음 적정한 시점부터 경영 수업을 하게 한다.

다음으로 힙(HiPP)사의 사례이다. 이 기업은 창업자의 4대 후손이 경영하고 있는 유아용 이유식제품 분야 유럽 1위의 히든챔피언이다. 동사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고유사업 분야에만 집중하는 사업전략을 창업 이후 지금까지 고수해 오고 있다. 독일 이외에 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동사는 해외사업의 최고 책임자는 모두 현지인이고 중간간부의 대부분도 현지인으로 활용하고 있는 데, 이는 현지의 상관습과 법제도, 대고객 마케팅 등에서 현지인이 더 좋은 성과를 시현하기 때문이다.

동사는 일찍부터 사회책임 경영과 윤리경영을 실천해 오면서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해 왔는데, 대표적인 환경 친화적인 기업으로 지난해에는 지속가능 경영 부문에서 독일 1위를 차지하였다. 이 기업은 핵심 기술자원의 대부분을 자체조달하고 있으며 대학 및 외부 전문연구기관과 공동으로 기술개발 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동사는 종업원들이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도 건전하게 잘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는 ‘개인이 행복해야 조직도 행복할 수 있다’는 CEO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되었다. 직원의 이직률은 0.5% 수준으로 낮고 평균 재직기간은 30년이며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정년인 65세까지 근무한다. 생산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되어 있고 직원의 연봉은 대기업의 120%에 이르는 업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구 동독지역 체코와의 국경지대인 사이팬에 소재하는 뮬러(Mueller)사도 예술품에 가까운 목공예제품을 생산하는 113년 된 중소기업 규모의 히든챔피언에 속한다. 이 회사는 4대째 마이스터가 경영하는 기업으로 창업 초기부터 예술성이 강한 크리스마스 장식용 목각공예품을 전문으로 생산해 왔다. 일찍부터 세계시장을 개척하였고 현 CEO도 해외시장 개척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서의 부족한 기술역량 보완을 위해 지역에 소재하는 대학 및 연구소와 필요한 기술개발 활동을 전개한다. 장기 근속자에게 마이스터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등 근로자의 성장을 지원하고 직원들과 성과를 공유하면서 열린 경영을 도입한 결과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고 매우 생산적이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히든챔피언의 성장요인

이상과 같은 사례를 통해서 독일 히든챔피언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요인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미 있는 특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고유사업 분야에 집중하면서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종업원의 성장과 행복한 삶을 적극 지원한다. 빠른 성장이나 단기적인 성과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중시하는 경영활동을 전개한다. 해외시장을 중시하되 단순한 해외시장 진출이 아닌 현지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현지 고객과의 친밀성을 유지한다.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하여 사회적 책임활동을 적극 수행한다. 창업정신과 기업소유 패밀리의 청지기정신을 강조하는 등 왕성한 기업가정신과 준비된 사업승계를 통하여 명품 장수기업화를 도모한다.

앞에서 살펴 본 독일 히든챔피언의 지속 가능한 성장요인과 경영특성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새해를 맞아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꿈꾸며 세계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기업과 기업인들이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교훈들이다.   
 
 
KECI | 2016.01.31 14:44 | 조회 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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