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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혁 칼럼] 吉士 吉臣 吉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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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8

 

▲ 김유혁 문화저널21 상임고문, 
前 금강대 총장

이 기록은 여씨춘추 귀당편에 실려있다(呂氏春秋 貴當篇). 귀당(貴當)이란 즉거조 귀재득당(卽擧措 貴在得當)을 줄인 말이다.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당연한 도리와 지당한 이치를 터득하는 것보다 더 귀중히 여겨야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도리라는 것은 사람이 깨달아서 실천해야할 당위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지당한 이치라는 것은 사물 속에 내재하는 유물유칙(有物有則)의 당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춘추시대의 오패왕(五覇王) 중 마지막 패주(覇主)인 초장왕(楚莊王)은 세상에서 관상을 가장 잘 보는 사람(善相人)이 초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듣자하니 그대는 관상을 보고 한 번도 틀린 일이 없다(所言無失策 / 소언무실책)고 알려져 있는데, 과인의 관상에 대해서 좀 들려달라”

관상인이 말하기를, “사람을 볼 때에는 심상(心相)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정감(情感)에 의해서 마음의 상태가 자주 바뀔 뿐만 아니라 신념(信念)마저도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심상(心相)은 정확하게 볼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초장왕은 “그렇다면 그대가 보고 잘 맞춘다는 선상인(善相人)이란 소문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관상인은 그것은 심상을 잘 보고 맞춘다는 뜻이 아니고, 심상을 살펴보는 방법이 정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일반 선비들의 경우는 그가 길사(吉士)다운 심상을 지니고 있는가?”
“중직을 맡고 있는 신하의 경우는 그가 길신(吉臣)다운 심상을 지니고 있는가?”
“군주의 경우에는 그 임금이 길주(吉主)다운 심상을 지니고 있는가?”

이런 것을 관찰하는 방법론이 사람의 관상법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일반 선비들의 심상을 살필 경우(觀布衣)에는 그와 가까이 지내는 벗들을 살핀다. 그의 벗들이 효제윤리(孝悌倫理)에 밝으며 천성이 순수하고 겸손(純謹)하며, 준법정신이 뚜렷하고 질서존중의식이 확연하다면 그들의 가풍이 좋고 몸가짐이 단정하다. 그와 같이 친교가 두터운 친구들의 처신자세를 통해서 그 선비의 길사(吉士)다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높은 벼슬길에 나선 신하들의 경우도 그와 친교가 두터운 동료라든가 그에 의하여 임명되는 주변 인물들의 생활행태를 통해서 그 신하의 심상을 살필 수 있다고 했다. 즉 그의 측근인사들이 한결 같이 성실하고 신뢰가 두텁고, 좋은 일과 선행을 좋아한다면 그런 주변 인사를 거느린 신하는 나라 위해 충성하고 맡은 바 직분과 직책수행에 성실하기 때문에 길신(吉臣)답다고 한다.
 
그리고 군주의 심상을 보는 방법은 여사하다고 진언했다.
“첫째는 내각에 어진 신하들이 많아야한다(其朝臣多賢 / 기조신다현)”
“둘째는 군주 좌우에 충신이 많아야 한다(左右多忠 / 좌우다충)”
“셋째는 군주가 실정을 하게 될 경우에는 신하들이 앞다투어 직간을 해야 하다(主有失 皆交爭証諫 / 주유실 개교쟁정간)“

이와 같은 내각풍토가 성숙되어있을 때 그 군주를 일컬어 길주(吉主)라고 한다.

초장왕은 관상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크게 깨우친 바 있어서, 그 때부터 어진 선비와 덕망이 있는 인물들을 서둘러 등용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더니 드디어 춘추시대를 호령하는 패주가 되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於是疾收士 日夜不懈 遂覇天下 / 어시질수사 일야불해 수패천하).

그리고 초장왕은 치세를 열어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여 무려 23년간이나 패주의 자리를 지켜갈 수 있었다. 특히 그는 관즉득중(寬則得衆)이라는 고사성어를 전하는 주인공으로서 후세인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

초장왕은 패주가 되기 이전에는 주연과 가무(酒宴 歌舞)를 즐기는 군주였다. 심지어는 군주에게 직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명을 반포한 군주이기도 했다.

그 때 오거(伍擧)라는 중신이 왕에게 고했다. “삼년불명불비조(三年不鳴不飛鳥)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진언하여 언로를 열어갈 것을 권했다. 그리고 소종(蘇從)이라는 중신은 죽기를 각오하고 주연과 가무에서 벗어날 것을 직간했다. 그 두 중신들의 충간에 깨우친 바 있었던 초장왕은 그간 그에게 아첨하면서 유흥의 빠져들게 했던 수백 명의 간신배들을 죽이고 충직한 신하들을 소중히 여기는 군주의 모습으로 일변했다.

어느 날 좋은 신하들과 주흥을 즐기는 연회를 베풀었다. 조명을 흐리게 하고 마음 놓고 가무를 즐기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초장왕의 애첩이 소리 지르면서 나를 범한 놈이 있으니 빨리 불을 켜라는 것이었다. 그 놈의 갓끈을 내가 잡아떼었으니 그놈을 찾아내라 소리쳤던 것이다. 그 때 초장왕은 즉석에서 명하기를 불을 켜기 전에 모두 갓끈을 잡아떼라 했다. 그리고 불을 켜게 했다. 그래서 그 범인을 찾아낼 수 없게 하였다.

그 후 진나라와 싸워서 승리함으로서 패왕 진목공을 무너트리고 초장왕이 새로운 패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 전쟁에서 가장 용맹스럽게 싸워 크게 전공을 세운 가신 한 사람이 있었다. 포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 가신은 고백했다. 그 연회 때 갓끈을 잡혀 떼인 범인이 소장이였다고 용서를 빌었다. 초장왕은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 때부터 후세의 사가들은 그 사례를 일컬어 군주가 어진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면 군중을 얻는다는 관즉득중(寬則得衆)의 고사성어가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책임전가에 능한 우리의 현실을 조명해주는 거울이 되지 않을까 한다.   

 

KECI | 2016.01.31 14:41 | 조회 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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