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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정화된 시대를 꿈꾸며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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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황량하고 스산한 숲을 거닐고 있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이를 가졌어요. 그러나 당신의 아이가 아니랍니다. 나는 죄를 짓고 그대 곁을 걸어요. 나는 나 자신에게 끔찍한 죄를 지었어요. 나는 행복을 바랄 수 없어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이 가진 아이는 당신 영혼에 짐이 되지 않을 거에요… 우리의 사랑이 낯선 이의 아이를 정화시켜 나의 아이로 만들어줄 것이오. 당신은 내 삶에 빛을 안겨주었는데 이제 내게 아이까지 안겨주려 하네요“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그들의 숨결이 공기 속에서 입을 맞춘다. 두 사람이 밝고 정결한 밤길을 걸어가네.》

 

독일 표현주의 문학의 선구자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 1863~1920)'의 연작 시집 [여인과 세계] 중 『두 사람(Zwei Menschen)』이라는 시(詩)의 일부다.

 

사생아를 잉태한 여인이 어느 날 밤 숲속을 거닐며 연인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있다.

 

이때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가진 아이는 당신 영혼에 짐이 되지 않을 거에요. 우리의 사랑이 낯선 이의 아이를 정화시켜 나의 아이로 만들어줄 것이오.”

 

달빛 숲속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순수한 영혼의 대화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두 사람이 밝고 정결한 밤길을 걸어가네(Zwei Menschen gehn durch hohe, helle Nacht)“

 

이 시의 마지막 행 구절이다.

 

이 밤은 신성한 밤이다. 정화된 밤이다.

 

죄를 고백하기 전 황량하고 스산한 숲을 거닐던 그녀의 힘겨웠던 발걸음이 사랑의 힘에 의하여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 밝고 정결한 밤을 함께 걷는다.

 

이 사랑의 숭고한 모습이 세계인을 감화시켰다. 이 사랑의 감화가 두 불세출의 예술가로 하여금 또 다른 위대한 작품을 탄생케 했다.

 

하나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상징주의 회화의 대가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위대한 작품 『사랑(Love)』이다.

 

▲ '사랑' 1895년 작, 구스타프 클림트; 44cmx60cm, Oil on Canvas,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포옹한 채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모습이다.

 

클림트는 다양한 에로티시즘의 작품을 남겼지만 이 ‘사랑’이라는 작품에서는 다른 작품에서 발견할 수 없는 퍽 순수하고 진지함이 엿보인다. 입맞춤 직전의 두근거림만이 존재한다.

 

작가는 사랑을 육체적 행위보다는 두근거리는 순수한 가슴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와는 달리 윗부분에 그려진 다른 인물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마치 악한 영혼들이 지켜보는 듯하다

 

또 하나는 무조(無調) 음악, 12음 기법의 창시자로서 오늘날 현대음악의 새 경지를 개척한 음악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가 그의 나이 25세 때 ‘데멜’의 시 『두 사람』에 매료되어 이 시에 담긴 느낌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곡을 썼는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 둘씩 총 6개의 악기로 편성하여 작곡한 『정화된 밤』이라는 제목의 현악 6중주곡이다.

 

필자는 이 시와 그림과 음악을 읽고, 보고, 듣는 중 지난 2021년 청와대에서 열렸던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당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는 ‘입양 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입양부모의 경우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아동을 바꾼다든지.....”라는 발언 때문이다.

 

이 발언에 대해 “입양아동이 반려동물이나?”, “입양아동을 물건 취급하느냐?”, “입양은 쇼핑이 아니다”라는 등 국민의 공분이 거세게 일었다.

 

이는 앞서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12년 ‘인권정책 10대 과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사람이 먼저입니다”라는 선언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반인권적 발언이다.

 

그가 대통령이었던 2019년, 정부는 탈북하여 귀순 의사를 밝힌 어부 2명에게 안대를 씌우고 포승줄에 묶어 북에 넘기므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또한 다음 해인 2020년에는 우리 공무원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탄에 사살되어 시신이 불태워졌는데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섣불리 월북자로 몰았다.

 

요즘 도하(都下) 각 언론에 가장 비중있게 오르내리고 있는 이 사건들은 굳이 법 조항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앞서 이러한 흉악한 범죄에 비해 입양아동에 대한 반인권적 발언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글머리에 언급한 데멜의 시에 나오는 남자의 입장에서, 애인으로부터 자신의 배 속에 잉태한 생명이 다른 남자의 아이라는 고백을 듣고 어찌 마음이 좋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낯선 이의 아이를 정화시켜 나의 아이로 만들어줄 것이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위대함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생명의 입양도 출산과 다름없다. 입양하는 순간 가슴으로 낳는 것이다.

 

요즘 세간(世間)에 떠도는 여러 가지 비리 의혹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정치의 속성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정인이 사망사건에서 비롯된 대통령의 발언은 절대로 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다. 그저 다시는 이러한 대통령은 만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발언의 당사자나, 이 발언을 옹호하는 주변 세력들은 마치 클림트의 『사랑』이라는 그림에서 두 연인의 순수한 사랑을 내려다보는 심상치 않은 악한 영혼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과연 우리에게 정화된 시대는 언제나 도래할 것인가?

 

‘아놀드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곡 『정화된 밤』을 함께 듣고자 한다.

 

20세기 현대음악의 선구자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그가 낭만주의를 추구하던 젊은 시절에 쓴 곡으로 음악뿐 아니라 표방하고 있는 주제나 내용이 모두 낭만적인 작품이다.

 

또한 이 곡은 프로그램적인 표제를 달고 있지만 일정한 플롯(Plot)은 없고, 다만 두 남녀가 나누는 이야기와 그것에 어울리는 분위기만은 시종일관 표현하고 있다.

 

음산하면서도 가끔씩 들리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호소와 그것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한 관용과 이해가 화성적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아놀드 쇤베르크,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작품 4

Arnold Schoenberg, String Sextet ‘Verklärte Nacht’ Op.4

New Russian Quartet

 

 

쇤베르크의 야상곡 『정화된 밤』을 듣고 있노라니 이 야심한 밤이 너무나도 깨끗하다는 느낌이 든다. 깨어있음이 너무도 행복한 그런 밤인 것 같다.

 

역시 더럽고 혼란한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는 도구는 문화예술 밖에 없는 듯하다.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외부필진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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