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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벗어서 아름다운 여인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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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디바(Godiva)라는 여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디바는 11세기경 잉글랜드 코벤트리 지방에서 유래된 전설적인 여인이다.

 

먼저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영국은 6세기 이후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 색슨(Anglo-Saxon)족의 나라였다. 하지만 8세기 후반부터 10세기에 걸쳐 소위 바이킹(Viking)이라 일컫는 데인(Danes)족의 침략을 받아 11세기 초반부터 데인족의 왕인 크누드 1세의 통치를 받았다.

 

이에 따라 데인족은 자신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앵글로 색슨족 농민들에게 가혹하리만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고 이로 인하여 원주민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앵글로 색슨족 출신의 귀족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고디바는 영국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領主)인 레오프릭(Leofric) 백작의 부인이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레오프릭은 환갑을 넘긴 노인이었고 고디바는 18세 정도의 젊은 나이로 레오프릭의 후처였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가 자기가 통치하는 지역의 농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는 등 갖은 핍박 속에 살아가는 동족을 불쌍히 여겨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줄 것을 여러 차례 간청했지만 남편은 아내의 의견을 매번 무시한 채 여전히 농민을 탄압했다. 그러나 고디바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간청하자 이에 남편 레오프릭은 아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당신이 만약 나체로 말을 타고 나의 영지를 한 바퀴 돌아온다면 세금 감면을 고려하겠소”

 

이는 보수적인 나라 영국에서, 더욱이 당시 신분 높은 귀족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남편 역시 아내의 나이가 18세 정도의 젊은 여인임을 고려할 때 절대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제안을 받고 고디바는 깊은 고민 끝에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소식은 곧 코벤트리 전 지역에 퍼졌다. 이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숭고한 뜻을 존중하며 그 일이 행해지는 날에는 어느누구도 바깥에 나가지 않음은 물론 창문마다 커튼을 치고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결국 고디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섰고 그녀가 돌아오기까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 숨죽인 채 기다렸다.

 

이는 공동체를 위한 고디바의 숭고한 희생적 결단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적 윤리의식으로 그녀에게 보답한 것이다.

 

결국 아내의 용기있는 행동에 감명받은 남편 레오프릭은 세금을 경감하여 평화로운 지역을 만들었다는 유명한 전설이다.

 

이 전설을 배경으로 존 콜리에의 명작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가 탄생하게 된다.

 

▲ 고디바 부인(Lady Godiva), 존 말러 콜리에(John Maler Collier) 작품(1898), Herbert Art Gallery and Museum 소장 / 여성의 인물을 주로 그렸던 영국의 화가 존 콜리에는 당대 뛰어난 초상화가 중 한 사람으로 ‘토마스 헉슬리’, ‘찰스 다윈’ 같은 유명인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드화(Nude畫)인 이 작품은 희생과 사랑이 담긴 명작으로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그 후로 영국 코벤트리 지역에서는 해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말을 탄 고디바의 동상이 세워진 대성당을 중심으로 ‘고디바 축제’가 열리고 있고 벨기에의 어느 초콜릿 회사에서는 그녀의 이름인 고디바를 상표로 초콜릿을 만들어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고 있다.

 

또한 이 전설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이를 통해 재미있는 두 개의 단어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하나는 ‘Peeping Tom’이다.

 

벌거벗은 고디바가 말을 타고 마을을 돌 때 마을 공동체의 약속을 깨고 양복 재단사 ‘톰(Tom)’이 창문 사이로 그녀를 엿보다(Peep) 그만 천벌을 받아 눈이 멀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음증이 있는 사람을 영어로 피핑 탐(Peeping Tom)이라 한다.

 

또 하나는 ‘Godivism’이다.

 

이 고다이바이즘(Godivism)은 정치용어로 어떤 관행이나 힘의 원리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즉 농민들에 대한 무거운 세금 징수를 막기 위해 벌거벗고 거리에 나서야 하는 기로(岐路)에 선 고디바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 모습에서 비롯된 영어 단어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훈적 용어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디바는 ‘벗음’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런 여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고디바와 상반(相反)되는 여인도 있다. 즉 ‘입음’으로 빈축을 샀던 우리나라 어느 대통령 부인이다. 시대적 상황은 차이가 있지만 두 여인 모두 정치권력자의 아내이다.

 

고디바는 얼마든지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있었지만, 빈곤으로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오히려 옷을 벗음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검소함을 솔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에 지나치도록 많은 옷을 구입하여 입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사들인 옷이 몇백 벌인지?, 그 많은 옷을 사비(私費)로 구입했는지?,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했는지? 등을 굳이 따지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국가 최고지도자의 아내로 있으면서 극도의 사치와 허영에 빠진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성의 외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여인의 아름다움은 비싼 옷을 입고 사치스러운 귀금속을 휘감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옷을 ‘벗어서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가 하면, 반면 ‘입어서 추한 여인’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자고로 “여자는 요상하다”라는 구설(口舌)을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강 인

문화예술 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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