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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바보들의 행진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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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갖고있는 여고 동창 중 한 친구가 이 모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보가 아닌데 어떻게 동참할 수 있겠니?”

 

그러자 그 친구는 이런 답변으로 다시 권했다.

 

“그래, 너는 네가 바보인 걸 모르는 바보니까 우리 모임에 동참할 자격이 있단다.“

 

뒤돌아보면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인 1975년 봄, 시중에는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한참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 내용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당시의 암울한 사회현실 속에서 주인공인 두 젊은이는 나름 희망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한 사람은 죽음을, 또 한 사람은 병영(兵營)을 향하는 현실도피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인기작가 최인호와 하길종 감독이 이 두 젊은이를 모델로 70년대 청춘들의 빗나간 모습을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기발한 제목하(下)에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 무려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바보들의 행진’은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 전 분야에서 수없이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근래 필자의 눈에 비친 매우 심각한 어느 바보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한 가지 재미있는 예화(例話)를 소개한다.

 

『어느 여름날 더위에 지친 주인이 마당에 평상을 펴고 낮잠을 자려하면서 집에서 키우는 원숭이에게 "자는 동안 파리를 쫓아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이 잠들자 파리들이 주인의 얼굴에 앉기 시작한다.

 

원숭이는 파리를 쫓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휘저어 보지만 파리는 계속해서 주인의 얼굴을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화가 난 원숭이는 주변에 있는 머리통만한 돌을 들어 주인의 얼굴에 앉은 파리를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순간 파리는 날아가고 주인의 얼굴은 처참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평소 대통령과 목사에게서는 허물이 보여도 웬만하면 비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통령에 대한 돌팔매질은 자칫 나라와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고, 또한 목사에 대한 비판은 자칫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이들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할 것 같다.

 

지난 2020년 8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교회 지도자 16명을 청와대에 초청, 코로나 시국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가 방역의 모범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고 교계(敎界)를 대표한 지도자들은 “방역에 협력하되 예배를 정상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이에 대한 실효적인 방안으로 ‘정부와 교회의 협력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또한 참석자 중 ‘소’ 모 목사는 “좀 더 따뜻한 언어로 교회를 아울렀으면 좋겠다”는 자칭 시인(詩人)다운 건의도 전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당부나 교회 지도자들의 제안, 건의 등은 이미 예상했던 의례적(儀禮的) 내용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보다는 아래와 같은 대통령의 발언과 이에 대한 기독교계 대표들의 반응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바이러스는 종교나 신앙을 가리지 않는다. 예배나 기도가 마음의 평화를 줄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 방역은 신앙의 영역이 아니고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라는 것을 모든 종교가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2020.8.27. ‘Topstarnews, 참조)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과연 대통령이, 더구나 교황 앞에서 “나도 가톨릭 신자입니다”라고 고백했던 문 대통령이 기독교계 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가?

 

“예배나 기도가 마음의 평화는 줄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

 

대통령은 기독교의 예배나 기도를 요가(Yoga)나 명상(冥想)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예배나 기도의 정의(定義)를 모르고 한 말인가? 아니면 현역 목회자인 기독교계 대표들 앞에서 방역에 대한 협조 당부 외에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실수로 한 것인가? 전자(前者)라면 무지(無知)이고, 후자(後者)라면 지혜롭지 못한 발언이다.

 

또한 이 말을 듣고도 침묵하고 있는 목사들의 태도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한술 더떠서 청와대 관계자는 간담회가 끝난 후 "이날 열린 간담회는 기독교계와 '충돌'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교감'하는 분위기였다"고 강조했다.

 

여기 모인 기독교계 대표들이란 쉽게 말하면 모두가 평수 넓은 교회당에서 시무하는 덩치 큰(?) 목사들이다.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교감했다는 것인가?

 

성경에 기록된 신유(神癒, 병 고침)의 은사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원리 중 하나이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내 이름으로...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막16:17)

 

실제로 신약성경에는 예수께서 친히 ‘중풍병자’, ‘문둥병자’, ‘열병환자’, ‘눈먼 자’, ‘앉은뱅이’, ‘귀신들린 자’ 등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심지어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등의 기적을 행한 기사로 가득 차 있다.

 

목사는 예배 시 신자들에게 성경말씀 선포의 직책(職責)을 맡은 사역자이다.

 

모든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교회에서 이러한 사명을 힘써 행하고 있다.

 

크리스찬인 필자는 지난 주일 ‘S’교회의 TV 실황을 통해 비대면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 'S'교회는 이번 청와대에 초청받아 코로나 시국 간담회에 참석한 16명의 목사 중 한 사람인 ‘이’ 모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초대형교회다.

 

이 목사는 설교 중 “코로나와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 모든 병을 쫓아주시고 코로나로부터 치료받는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라고 힘 있게 외쳤다.

 

또한 설교 후에는 참석한 모든 신자들에게 아픈 신체 부위에 손을 얹으라 한 후 온갖 병명(病名)을 나열하며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라고 기도했고 신도들은 ‘아멘’으로 신앙을 고백했다.

 

이렇듯 매 주일 교회에서는 성경말씀대로, 교리(敎理)대로 가르치며 이 교리에서 조금만 어긋나는 발언에도 이단(異端)으로 몰아 사탄(Satan) 취급을 서슴지 않는 목사들이, 신앙의 능력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대통령의 비성경적, 비교리적 발언에는 왜, 아무 반론(反論) 없이 침묵하고 있는가?

 

이 16명의 목사들이 시무하는 교회에 속한 교인들 중에는 의술(醫術)로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쉬지 않는 환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권력 앞에 침묵하는 이런 목사들의 모습은 그 환자들을 절망으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매우 점잖아 보이는 국가와 기독교계 최고 수준의 지도자들이지만 실상은 심각한 '바보'들이다.

 

대통령은 '함량부족의 바보'이고 목사들은 정치권력 앞에 '비굴한 바보'들이다. 이런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없을 것이고, 이런 목자들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렇듯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르는 이런 고급 '바보들의 행진'이 한(恨)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얼마 전 어느 유명 가수도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한탄사(恨歎詞)’를 발했나보다.

 

글머리에 언급한 아내의 친구들이 결성했다는 ‘바보들의 행진’, 참 멋지다.

 

이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호칭(呼稱)은 당시 최고 명문으로 인정받던 ‘K’여고(女高) 출신의 몇몇 친구들이 모여 명명(命名)한 자칫 유치(幼稚)하게 여겨질 수 있는 모임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모임을 통해, 지나온 자신들의 삶이 온통 바보의 모습이었음을 깨닫고 고쳐나가기를 원하는 ‘Wise Women’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 귀한 모임에 새로운 바보로 동참하기를 아내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이 바보인지 모르는 바보들에게 노래 한 곡 띄운다.

 

링크 :   https://youtu.be/4Xr_8pCk-GI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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