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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K에게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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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어 알파벳 중에 가장 유행하는 글자는 단연 ‘K’일 것이다.

 

이는 ‘Korea’의 머리글자로, 연예계의 한 분야인 ‘K-Pop’에서 비롯된 것인데 최근에는 정치, 사회 등 여러 분야가 웬만한 단어 앞에 K라는 글자를 얹어 쓰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혹시 애국심의 발로(發露)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 단어 앞에 K자를 붙인다고 한국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강아지 그림에다 사람의 머리를 붙인다고 사람이 될 수 없듯이…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K라는 글자가 퍽 유감스럽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 사례(事例)만 들어 보려 한다.

 

K-Pop

 

문자적으로 ‘Pop(Popular Music)’이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에서 음반산업 등 상업성의 물결을 타고 탄생한 대중음악을 말한다.

 

필자가 학창시절이던 1960~1970년대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불러 인기를 모은, 소위 ‘팝송’이라 일컫던 노래들이 바로 Pop Music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2월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이라는 정부 시책을 추진한 바 있으나 예술 분야에 무지(無知)한 관리(官吏)들의 어설픈 행정으로 근 1년간 정책의 방향도 찾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다가 이에 앞서 약 20여 년 전부터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젊은 팝 가수들이 그동안 전혀 정부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놓은 해외에서의 한류(韓流) 붐(Boom)에 편승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들이 문화융성의 주체가 되고 말았다.

 

이를 통해 부각된 이름이 바로 ‘K-Pop’이다. 그러자 당시 ‘김’ 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계 각국에 파견한 해외문화원장들에게 훈령을 내려 지역마다 연례적으로 K-Pop 경연대회를 열게 했고 국내에서는 체조경기장을 리모델링 하여 총 1만 5천석 규모의 K-Pop 전용 대형 ‘아레나(Arena)’ 공연장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영어 ‘아레나’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 ‘아레나(Harena)’에서 온 말인데 ‘모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과거 검투사들이 싸우며 흘리는 피를 흡수하기 좋도록 모래를 깔아놓은 데서 유래된 것이다.

 

바위와 같이 든든히 서야 할 예술문화 정책이 향후 모래와 같이 흩어질 관료들의 모래정책은 아니었는지…

 

최근 우리나라의 팝 댄스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활약은 ‘대단하다’라는 표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원래 Pop이란 미국, 영국의 상업성 대중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 장관은 한국을 ‘K-Pop의 본고장’이니, ‘K-Pop을 통해 세계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느니 하며 ‘아이돌’, ‘걸그룹’들에게 해외공연을 독려, 국제 앵벌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서양의 음악인 Pop 앞에 K를 붙이면 한국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는 아이돌(idol)의 문자적 의미와 같이 ‘오류(誤謬)‘, ‘환영(幻影)‘일 것이다. Pop을 우리 음악문화로 아는 무지함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알아야 면장(面墻)을 한다.” 즉 ‘알아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K-Classic

 

‘클래식(Classic)’의 사전적 의미는 ‘서양의 전통적 작곡 기법이나 연주법에 의한 음악‘이다. 쉽게 말하면 서양의 고전음악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어떤 음악평론가가 클래식이라는 단어 앞에 K자를 붙여 ‘K-Classic‘이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더욱이 서양의 고전음악 앞에 Korea를 상징하는 K자를 붙이는 것도 어색한데 게다가 ‘K-Classic 조직위원회’라고까지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조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보통 ‘조직위원회‘라 하면 올림픽 기구에서나 들어 봄 직한 용어이다. 그런데 그분이 만든 조직은 도대체 클래식 음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얼마 전 모 음악잡지 기자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년 전 한동안 경기도의 경관 좋은 어느 지역 인근에 모여 사는 예술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어느 날 이 모임에 참석한 모 여성 성악가가 “내 꿈은 우리가곡을 레파토리로 해외 각지에 순회공연을 갖고 ‘K-클래식‘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라고 발언했는데 그 자리에 동참했던 앞서 언급한 음악평론가가 바로 다음 날 특허청에 K-클래식이라는 명칭을 본인 이름으로 등록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K-클래식 조직위원회를 만든 목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토록 재빠르게 특허청에 등록까지 한 것을 보니 순수음악인이 대중음악인 보다 훨씬 세상살이에 능란하며 심지어 상혼(商魂)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위 순수를 지향하는 클래식에 K라는 소유격 상혼이 끼어들었다면 이는 이미 클래식이 아니라 시쳇말로 ‘걸레식‘이 아니겠는가?

 

비록 K-클래식이 빛바랜 명칭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발상의 주인인 그 여성 성악가에게 돌려주는 것이 순리(順理)가 아닐까 여겨진다.

 

과거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은 유럽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Austria) 출신인 모차르트의 음악을 두고 ‘A-Classic‘이라 하지 않고, 독일(Germany) 출신인 베토벤의 음악을 두고 ‘G-Classic‘이라 하지 않는다.

 

이 시대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음악을 애호(愛好)하고 향유(享有)한다.

 

K-Pop과 마찬가지로 Classic 앞에 K를 붙인다고 Korea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K-방역

 

음악을 떠나서 요즘 코로나 정국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것이 바로 ‘K-방역’이다. 이는 한국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다는 허황된 자부심에서 생겨난 신조어인 듯하다.

 

이렇듯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인 코로나에 대한 K-방역이라는 말이 세간(世間)에 널리 퍼지면서 각종 단어에 K자를 접두사로 붙이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정치 뉴스에는 여권(與圈)의 대선주자인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 3인을 일컬어 ‘K-3색 브랜드’라든지, 이낙연이 주장하는 ‘K-양극화’, 또한 이재명의 ‘K-정책’ 등의 용어가 감히 우리의 국가 명칭(名稱)인 K를 머리에 달고 신문지상에 서슴없이 오르내렸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K-오페라’, ‘K-발레’, ‘K-골프’, ‘K-미투’, ‘K-성형‘, ‘K-국방’, ‘K-적폐’, ‘K-포퓰리즘’ 등 수 많은 애국적(?) K-신조어들이 난무(亂舞)할 전망이다.

 

문득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이선희가 불러 대상을 차지한 ‘J에게’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과거, 고교시절 가수 지망생이던 이선희가 장욱조라는 작곡가 사무실에 찾아갔으나 렛슨비를 감당키 어려워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마침 그곳에서 이세건이라는 무명의 작곡가가 “이 노래는 부르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라고 한탄하며 쓰레기통에 버린 악보를 이선희가 작곡자에게 “이 곡을 제가 불러도 되겠느냐?” 물었고 이를 허락받고 가져간 뒤 3년 후 강변가요제’에서 이 곡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그뿐인가 이선희는 이 J에게 라는 곡으로 그해 ‘KBS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컵’을 차지했고, ‘KBS 가요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으며,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최고 인기 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가요제 최초로 3관왕에 오르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J에게>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대 그리워하네

 

J 지난 밤 꿈속에 J 만났던 모습은

 

내 가슴 속 깊이 여울져 남아있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을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필자는 오늘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팬(?)의 한사람으로서 이선희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이선희 씨, 아직도 이토록 J를 그리워하다가는 친일(親日) 인명사전에 올라, 해(害)를 입지나 않을까 하여 지난 5년간 노심초사했습니다.

 

지금의 트렌드(Trend)는 J가 아니라 K가 대세(大勢)랍니다.

 

지난날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J에게’를 오늘 ‘K에게’로 바꿔 부르면 이 시대의 애국자로서 다시 한 번 최고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서두르셔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 냄비 기질이 있어서 언제, 어떤 이니셜(Initial)로 유행이 바뀔지 모르니까요…”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외부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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