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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 칼럼] 차라리 상실이 아름다운 토르소의 정치학

이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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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소]

모가지도 버려야한다

두 팔도 잘라야한다

남아있는 흉상으로

더욱 절실한 언어를 만들기 위하여

무서운 단죄를 내려야한다

파괴의 구도로 이루어질 뿐인 토르소

차라리 상실이 아름다운.....

 

▲ 벨베데레의 토르소 (현,바티칸 박물관 소장)


지난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발견한 이수익 시인의 '토르소(Torso)' 라는 시다.

 

이 시를 읽는 순간 필자가 받았던 짜릿한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슬픈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짧은 한 편의 시가 단순히 문학적 언어가 주는 감동을 넘어 또 다른 절실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토르소’는 이탈리아어로 '몸통'이라는 뜻이다. 미술적으로는 머리와 팔, 다리 등이 없는 몸통뿐인 조각 작품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지에서 발굴해 낸 조각상 중 머리와 팔, 다리가 없이 몸통만 남은 것들을 독립된 의미의 완전한 작품으로 생각하고 토르소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찾아내어 19세기 이후부터 부르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원전 1세기 작품으로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벨베데레(Bevedere)의 토르소’(상단 사진)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카라칼라 목욕탕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벨베데레의 토르소에 대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조각가이며 화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머리와 팔, 다리 부분을 복원하라는 교황의 지시에 ‘이대로가 최고의 작품’이라며 단호히 거부했다고 한다.

 

또한 18세기 독일의 미술 고고학자 ‘요아힘 빙켈만(Joachim Winckelmann)’은 “우리를 더 멀리 이끌고자 하는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슬픈 사색을 떠올리게 하며, 훼손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것들에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음을 보여준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토르소가 근대 조각의 시조라 불리는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이후 하나의 주요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댕에게서 토르소는 단순히 팔, 다리를 상실한 조각상이 아니라 몸통에서부터 응집된 에너지가 방출되는 새로운 예술이 된다.

 

비록 겉으로는 추해 보이나 속으로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형상. 깨지고, 부서지고, 잘려나가 더욱 아름다운 토르소. 이는 미술의 한 장르인 조각 작품뿐이 아니라 문학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시(詩)란, 혹은 글이란 이처럼 때로는 필요해 보여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정말 필요한 핵심을 남길 수 있는, 보다 함축된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실을 통해 토르소가 보여주고자 하는 몸통으로부터의 응집된 에너지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초월적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대할 때 미학적으로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음으로 더 아름다운 것, 이것이 초월적 아름다움이다. 바로 머리와 팔, 다리를 상실한 채 몸통만 남은 토르소이다.

 

문득 ‘토르소의 정치학’을 생각한다.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나랏일을 맡아서 하는 국가기관 하면 크게 분류하여 국회의원이 일하고 있는 국회, 판사와 검사 및 변호사가 재판을 하는 법원,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를 주로 떠올리게 된다.

 

법을 만드는 기관인 입법부는 국회, 법에 따른 심판을 하는 기관인 사법부는 법원, 그리고 나라의 살림을 운영하고 입법부가 만든 법을 실제로 집행하는 기관인 행정부는 청와대를 정점(頂點)으로하는 정부를 가리킨다.

 

이렇듯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바로 ‘삼권분립(三權分立)’이다.

 

과거 전제주의 시대처럼 권력을 쥔 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던 국가를 독재국가라 한다. 이러한 국가들은 대부분 반란과 투쟁으로 점철된 슬픈 역사를 기록해 놓았다.

 

그 후 민주주의 체제에 이르러서는 삼권분립과 같은 권력의 분산으로 서로 견제하며 권력의 균형을 이루므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를 수호하고 행복을 누리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작금의 정치 현실은 국가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마치 민주주의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 국민을 근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요즘 세간(世間)의 의혹으로 떠오른 권력형 비리나 직권남용, 불법 선거개입 등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교육 및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집권층의 횡포는 차치하고라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수장인 삼부요인(三府要人) 마저 제 위치를 망각하고 나라를 위한다는 소아병적 명분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국민이라는 몸통을 살찌우기 위해 공복(公僕)인 머리도 버리고, 두 팔, 두 다리도 잘라버리는 무서운 단죄를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소유하는 것이 더 이상 유익하지 않은 존재라면 차라리 상실이 아름답기에.....

 

토르소와 같이 머리와 팔, 다리를 모두 잘라버린 채 새로운 정치학이 펼쳐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즉, 절단된 모가지와 어깻죽지, 장딴지에서 지금의 머리, 팔, 다리가 아닌 초월적인 다른 무언가가 자라 나오는 새로운 토르소를 볼 수 있는 그런 날을 말이다.

 

강 인

예술평론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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