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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칼럼] 합창계에 불거진 문제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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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누구나 상용하는 '도. 레. 미. …' 처럼  


오늘날 음악과 관련하여 오선지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의 7음 음계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세계성을 가진 음악이라면 각 민족마다 그들 고유의 음악 기보법과 함께 국제화된 이 표기법을 써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인류 공동체의 음악을 시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도. 레. 미. …'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것은 무슨 뜻인가. 

 

▲ 이영조 작곡가  © 문화저널21 DB

 

그 전에 있었던 여러 음계와 다른 구조를 가진 이 7음 음계는 이태리의 이론가이자 작곡가이며 성직자였던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 991년?~1033년? 또는 아레초)에 의해 창안 되었다. 그는 당시 교황에게 직접 음악이론을 설파하기도 한 중요한 인물이다. 라틴어로 된 성 요한 탄생 축일의 저녁송 총 7절의 첫 머리 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매 절이 바뀔 때마다 온음 또는 반음씩 높이면서 7절 모두를 부른다.

 

•Do-Dominus.. 하나님

•Re-Resonare..(하나님의)울림

•Mi-Miragestorum.. 기적

•Fa-Familituorum..가족, 제자

•Sol-Solvepolluti..구원

•La-Lavii..하나님 입술

•Si-Santeloannets.. 성 요한

 

이 곡의 내용을 보면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은 기독교인이나  불교신자나 비 종교인이나 그 누구도 노래를 공부를 한다면 '도. 레. 미. …' 라는 이 음계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 7음 음계는 그 누구도 종파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통한  우리의 삶을 지원하는 음악예술의 한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태여 음대 출신이면 다 아는 음계의 역사성을 논 하는 것은 서구의 기독교문화 특히 음악 분야에 있어서 기독교 종교음악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요불가결하게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일반화 되어있는가를 논하고자 함이다. 

 

기독교 예배의식의 중심은 '경배'와 '찬양'이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이사야 43장 21절)

 

그래서 기독교의 예배의식은 찬양을 중요시하고. 로마 가톨릭 시대로부터 종교개혁을 거친 후 오늘날까지 고도의 예술성을 가진 찬양곡의 개발은 물론 이를 부르는 찬양대의 기능과 역할 또한 중요시 해왔다. 곡 들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놓여있는 삶과 죽음에 관한, 죄의 고백과 회계,  용서 받음, 구원의 확신과 감사 그리고 찬양으로 점철되어 왔다. 시작부터가 삶의 성찰을 위한 깊은 음악을 추구하였고, 그것을 소리로 표현 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였다는 것은, 그 사회의 지적, 정신적 수준에 우리가 감탄한다. 고급 전문 작곡가와 연주가 들이 교회에 전속으로 속하게 되었고 음악은 선율, 화성, 형식과 구조면에서 그 예술적 경지가 높아져 종교의 영역을 넘어 음악 그 자체만의 힘을 가진 독자적 예술 영역으로 확대 발전하게 되었고 사회는 환호했다.

 

그러니까 교회를 본거지로 삼았던 음악은 이제 그 능력과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교회를 떠나 세속의 대중들이 찾는 공연장으로 무대를 옮겨 '출가' 하게 되었다. 거기서는 더 이상 꼭 하나님만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다. 세속음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신)과의 관계보다 인간 본연의 문화를 찾겠다는 소위 문예부흥기(Renaissance )라 부르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 예배음악 아닌 자선음악회 용도로 쓴 작품 

 

헨델의 '메시아'는 교회 예배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자선음악회를 위해 쓴 것이며 베토벤의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 슈베르트의 '시 23편' 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곡들이 그렇고 베르디의 '레퀴엠' 같은 곡은 오폐라를 연상 시킨다. 물론 이들 곡 중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예배에 사용할 수 있는 곡도 있으나 그것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작곡자의 의도는 예술작품으로 변모 성장시킨 것이며 종교의식을 위한 곡이 아니다. 마치 서두에 언급한 '도. 레. 미. …'의 7음 음계가 음악의 일반적 표기 수단이 된 것처럼 이들 작곡가들의 합창 작품은 종교적 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의식의 기능이 아닌 예술음악 자체로서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감상되어 왔다.

 

▲ 문제가 제기된 공연의 포스터 (출처=부산문화회관)  

 

이번 우리 합창계에서 생긴 아쉬움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작은 오해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음악계도 르네상스 이후의 이 사조를 그대로 수입 해왔다.(1885 년경). 이번 사건은 공연무대 예술작품으로 여긴 합창계의 생각과 달리 성서적 가사가 달린 이러한 곡들을 타 종교계에서는 르네상스 이전의  예배의식과 연계시켜 생각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유럽사회가 예배 의식 음악과 종교에서 시작된 예술음악 연주회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그들과 다른 우리의 다종교 문화 환경은 분명 유럽 등과  다르다. 이번 사태는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한 일부 합창단 지휘자의 혼재된 해석, 기독교와 불교간의 타 종교 문화를 서로 이해 할수 없었던 그간의 우리 사회문화의 환경에서 발생한 성장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복합적인 문제인 것이다.

 

행정이 아닌 학문적, 이성적, 토론을 통해 충분히 풀 수 있어

 

따라서 근자에 합창계의 레퍼토리 선정에 대한 불교계의 이의 제기는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학문적 토론의 자리를 통해 이성적으로 충분히 해소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합창 공연의 악곡 선택이 전적으로 지휘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 할 때(그래야만 그 합창단의 독자적 개성과 특성이 정립된다. 이를 위해 유럽 각국의 지휘자는 장기간의 엄정한 검증을 거친 후 평생직으로 임명한다.)그러나 국·시립의 공공기관 합창단의 악곡 선정은 민간 합창단과 달리 보다 포괄적으로 넓어져야 할 것이다. 지휘자에게는 여러 면에서 악곡 선택의 제한성이 야기된다. 이 문제는 여타 다른 종교계에서도 소리예술로서 합창곡의 필요성, 이에 따른 악곡 창출능력과 연주기능도 함께 커져야 그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즉 불교도 이제 좋은 작품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종교를 떠나 공연장에서 즐길 수 있는 작품 말이다. 

 

이러한 문화 예술 사조의 역사성을 고찰해 볼 때 이번에 불거진 합창단의 문제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으로 해결 하려고 하는데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불교계에도 이미 찬불가도, 합창단도 생겨난 지 오래다. 서양음악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 정체성 있는 자기의 종교음악 세계의 정립을 위한 노력이 있을 터인즉 이는 또한 한국적 합창 음악의 발전에도 큰 기여가 될 것이다. 비록 길고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나 필요와 수요가 있고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이러한 문제들이 평지를 이룰 때면 이번 합창계의 성장통과 같은 문제도 멈추지 않겠는가.

 

이영조 (작곡가,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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