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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평 칼럼] 트로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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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초등학생은 트로트 무대에 세우지 맙시다.

 

트로트 음악!  사실 필자는 평소 트로트 음악을 듣지 않던 사람이다. 그런데 미스터 트롯에서 김호중이 참여하면서 트로트 팬이 되었다. 듬직한 벨칸토 바탕에 대중적인 채취를 담은 음악이 나의 가슴을 흔들었던 것이다. 김호중의 '태클을 걸지마'를 들으면서 “와! 트로트에 이런 묘미가 있구나”하고 새롭게 트로트의 멋을 즐길 수 있었고, '보릿고개'의 '아이야 뛰지 말라 배 꺼질라' 이 구절은 필자가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서 듣던 말이다. 이렇게 트로트는 바로 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전인평 작곡가


필자가 2000년에 '새로운 한국음악사'를 집필하면서 트로트의 역사에 대하여 서술한 바 있다(341-345쪽).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헤어날 수 없는 식민지시대의 음악적 굴레는 트로트이다. 일제 강점기의 가장 성공적인 문화 이식 사례는 트로트이다. 이 트로트의 보급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어른부터 초등학생까지 트로트를 즐기게 되었다. 이러한 트로트의 보급은 '노들강변'처럼 흥청이는 민요풍의 멋을 밀어내어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꾸고 말았다.

 

트로트란 반박자 쉬고 시작하는 선율형과 반주가 저음과 고음이 번갈아 연주하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일본에서는 이것을 엔카(演歌)라고 한다. 트로트에서 사용하는 음악 어법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선 음계는 한국 음계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 중 '울려고 내가 왔나', '홍도야 우지 마라', '방랑시인 김삿갓', '비내리는 영동교 등은 이나카부시 음계이다.. '신라의 달밤',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은 미야코부시 음계이다. 이런 음악은 일본의 샤미센(三味線)으로 연주하면 더욱 멋스럽다. 이와 같이 일본 선법에 샤미센의 장식음 수법을 많이 차용한 노래가 트로트 음악이다. 트로트의 리듬 또한 우리나라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민요는 대부분 3박자 계통으로 흥청이는 멋이 있다.

 


외래적인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보다 서민의 정서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음악사에는 트로트의 선법이나 리듬을 사용한 음악을 찾을 수 없다. 이처럼 트로트는 외국에서 들어온 음악이 한국에 정착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곡한 '새마을 노래'와 '나의 조국'은 대표적인 엔카풍이다. 박대통령이 일제시대 군 생활을 하면서 엔카풍의 군가를 부르던 것이 뇌리에 박히고, 그 결과 자연스레 엔카풍으로 작곡한 것이다.

 

최근 TV나 라디오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트로트가 방송되고 있다. 처음에 TV 조선에서 시작된 트로트 열풍은 온 매체를 휘어잡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여러 해석이 있으나 중요한 요소는 트로트가 서민들의 답답한 마음에 위로를 주고 그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훈아의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가 대표적이 사례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트로트 문화에 대하여 일제강점기의 유산이기에 배격해야 된다는 논리를 펴고 싶지 않다. 트로트가 일본식 노래이기에 버려야 한다면, 미국식의 팝송은 왜 버리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음악 공연이 외래적인 것이기에 배격한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싶다. 샹송이 프랑스 음악이고, 팝송은 미국음악이고, 트로트는 일본풍에 영향을 받은 음악이다.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더구나 요즘 한국음악은 순수음악계나 대중음악계나 일본 음악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었다. 한국 음악계는 일본 음악계에 주눅 들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트로트 방송이 교육에까지 무차별 공격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러한 트로트 열풍에 대해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제발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빼달라는 것이다. 요즘 트로트 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어린이들이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항구의 남자'를 잘도 부른다. 이렇게 어린이들이 “울다 지쳐서, 한 잔술, 첫 사랑” 이런 퇴영적인 노래를 불러도 좋은가? 이런 현상이 한국 청소년들에게 어떤 교육적 효과를 미치는 지에 대하여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어린이들이 동요를 잊고 어른들의 노래에 심취해 있어 교육계에 비상이 걸려 있는 형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어린 시절에 겪어야 할 정서를 느끼며 자라야 한다. 비교육적 노래의 공중파 무차별 폭격은 끔찍할 상황을 불러올 것이다.

 

9살 김태연은 북을 메고 나오더니 판소리 “범내려 온다”를 불러 깜찍한 모습을 보였다. 9살 나이라면 열심히 기량을 닦을 시기이지, 판소리 토막소리 잘한다고 박수 받으며 우쭐해 할 시기가 아니다. 전해오는 말에 ‘소년 등과(登科)는 인생을 망친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배우기 전 어릴 때 과거 급제를 하면 대성하기 어렵다‘라는 뜻이다. 김태연이 정말 신동이라면 그를 더 큰 재목으로 키워 대들보로 써야지 당장 아쉽다고 석가래로 쓰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가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그 가정의 분위기를 알려 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곡이 흐르고 있는 가정이라면 매우 정돈된 분위기일 것이고, 오르간 코랄이 흘러나오는 분위기라면 그 집안은 매우 종교적인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로트 음악은 교육적인 분위기의 음악은 아니다. 물론 항상 모차르트 음악이나 코랄 음악만 듣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여흥 자리라면 트로트 디스코 탱고 음악도 필요하다. 여고생이 있는 집안이라면 K-pop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 어린이가 ‘그리움에 지쳐서, 첫 사랑, 이별의 아픔’ 어쩌고 하는 음악을 즐기는 것은 권장할 일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어릴 때 동화를 많이 읽게 하여 그들의 심성을 곱게 다듬어야 하고, 청소년들은 영웅전 같은 고전을 읽어 꿈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에게 알맞은 동요를 권장하고 청소년에게는 그들에게 알맞은 가곡 등을 부르도록 권장해야 한다. 이렇게 그들의 정신세계를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어른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해야 할 책무이고 의무이다.

 

전인평/ 작곡가 중앙대명예교수 

서울대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고, 인도 뉴델리 음악학교에서 인도음악을 연구하였다. 중앙대 국악대학 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중앙대 명예교수이다. 국립극장 자문위원, 국립국악원 자문위원 역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 아시아음악학회 대표, 영문학술지 Asian Musicology 발행인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거문고협주곡 '왕산악', 관현악곡 '쿠쉬나메', '실크로드의 노래' 등 80여 편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새로운 한국음악사', '아시아음악 오디세이', '동북아시아 음악사', '한국음악 선구자들의 삶과 음악' 등 25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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