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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기 칼럼] 트로트 공화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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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보존의 필수조건, 정치 국방 경제가 아닌 문화


 

지구상에는 참으로 수많은 나라가 존재하였고, 또한 사라져갔다. 그렇게 사라진 나라들의 공통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 국방, 경제, 등 굵직굵직한 문제가 원인이 아니었다.

 

청일전쟁 이후 1912년 어마어마한 대국이었던 청나라가 망하였다. 그런 그 청나라가 이 지구상에 다시 존재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남들은 청나라 문화가 어떠니 청나라 음식이 어떠니 하지만, 정작 그들의 뇌리 속에서는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나라에 비해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티베트는, 10년 이내 중국도 구소련처럼 붕괴될 수밖에 없을 때,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들은 그들의 문화가 잘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라보존의 필수조건은 정치 국방 경제가 아닌 문화이다. 이스라엘을 보라. 그들은 2000년이 지난 후에도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2000년의 긴 세월 속에서도 결코 그들의 문화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처음 식민지로 삼을 때에는 총칼을 앞세운 이른바 무단정치로 다스리다가,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이후로는 무단정치를 문화정치로 그 틀을 바꾸었다. 총칼로 다스리는 것보다, 한국 고유의 문화를 없애는 것이 한결 쉽고 현명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여 한국이 일본화가 되면, 한국국민의 뇌리에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사라짐과 동시에, 한국을 영원한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문화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모든 공교육에 일본의 말과 글을 쓰게 하였다. 우리 이름을 못 부르게 하고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게 하였다.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수많은 조작을 하였고, 30만권 이상의 역사 서적을 불태웠다. 우리의 국악을 엽전들이나 하는 저급한 음악이라 선전하여 부르지 못하게 하고, 일본음악으로 그 자리를 메꾸게 하였다.

 


일본 식민지 때 보다 더 한 트롯 열풍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트로트공화국이다. 방송채널을 틀기라도 하면 트롯과 연관된 것들이 쏟아져 나오니 가히 트로트공화국이라 할만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일본 식민지 때보다 지금이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트로트의 특징은 첫째 일본의 여러 음계 중, 주로 요나누끼음계와 미야꼬부시음계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나누끼음계는 쉽게 설명하면 서양7음계에서 파와 시가 빠진 5음계로 구성되고, 미야꼬부시음계는 그 요나누끼음계에서 미와 라가 반음 낮아진 음계로 되어있다. 그래서 요나누끼음계는 우리의 궁조, 평조, 계면조음계들과 구분이 힘들 때도 간혹 있지만, 미야꾸부시음계는 우리의 그 어떤 음계와도 확연히 다르다.

 

둘째 트로트는 거의 모두 2박자계통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음악은 3박 혹은 3박의 겹박으로 되어있다. 3박이 아니면 우리음악이 아니라 할 정도이다. 다시 말해 트로트는 음계도 박자도 다 일본 것이다. 일본이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를 영원히 집어삼키기 위해 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유명가수는 이 트로트를 우리 전통가요라 하였다.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다.

 

얼마 전까지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장노래자랑을 종종 들은 적이 있다. 보통은 시골 마을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그 마을 이장이 나와 노래를 한곡 부르는 프로그램으로, 그때 이장들은 하나같이 트로트를 불렀다. 그러면 심사위원들이 듣고 있다가 땡을 쳐서 탈락시켰다. 왜 심사위원들이 땡을 쳤을까? 대부분은 박자 때문이었다.

 

어릴 적 우리 아버지도 트로트 부르시기를 좋아하셨는데, 박자 없이 혼자 부르시면 곧잘 부르시다가도, 반주만 나오면 어디에서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 박자를 놓치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 아버지도 우리 민요를 반주에 맞추어 부를라치면 절대 박자 놓치는 법이 없었다. 아마 그 이장들도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와 꼭 같았을 것이다.

 


우리 언어의  민요 흐트려 놓은 변이종


 

얼마 전 색소폰을 배우시는 한 분이 저에게 질문을 했다. ‘이제 소리는 곧잘 내는데 박자가 어렵다’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왔다. 하나같이 박자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 그 색소폰을 부는 그 분도 우리 민요를 연주하셨다면 틀림없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다시 말해 트로트는 우리 생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 민요는 우리 언어체계에 맞게 3박자의 정박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트로트는 일본가요답게 2박에, 8분 쉼표를 동반하여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을 생각해보라. 2박에, 반 박자를 쉬고 들어와야 이 곡은 맞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도, 마을 이장님도, 색소폰을 부시는 분도, 반 박자를 쉬지 않고 우리의 생리에 충실하여 정박으로 시작하니 틀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래도 트로트가 우리의 생리에 맞는 전통가요라 할 수 있겠는가? 백번 천번 양보해도 일본가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번 유튜브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가 일본가요라고 검색해보라. 우리의 트로트와 곡조와 박자가 똑같은, 일본가사로 된 트로트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래도 트로트가 일본가요가 아닌가.

 

나는 일반 성인가요를 비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요사이 방송에서는 교묘하게도 트로트와 트로트가 아닌 일반 성인가요를, 모두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구분할 수 없게 뒤섞어 버렸다. 트로트만 하면 금방 일본가요라는 사실이 들통이 날까봐 그랬단 말인가. 이 또한 무슨 꼼수인가. 그러면 면죄부라도 된다는 것인가.

 


문화체육관광부 청소년 가요제는 무지와 개념없는 발상


 

그런데 이 정부는 일본이라면 경기라도 일으키듯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 트로트에 대해서는 왜 한없이 너그러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2020년 5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올해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를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개최에 참여할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한다는 공고문을 발표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이란 말인가. 일본가요를, 배우는 학생들에게까지 지원하며 장려하다니, 지나가던 소가 다 웃을 일이다. 이 정부는 이렇게까지 무식하단 말인가, 알면서도 눈감는다는 말인가. 사실 북한은 트로트를 일본문화의 잔재라는 사실을 알고 공권력으로 완전히 청산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도 공권력으로 하루아침에 트로트를 억지로 청산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어릴 적에도 트로트를 불렀지만, 좋은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곡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은 가끔 방송금지곡으로 분류도 하였고, 크고 작은 가요제에서 트로트를 부르면, 격이 떨어지는 음악이라, 입상권에 들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부추기는가. 장려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제발 그냥 내버려두라. 그러면 국민이 이 사실을 알고, 내가 어릴 적에 수도 없이 듣고 자랐던 일본말들이 지금은 자취도 없어진 것처럼, 일본가요도 꼭 청산되리라 확신한다. 언제까지 우리가 일본문화의 식민지로 살아야 할 것인가?

 

정덕기 작곡가 

-중앙대학교 음대 및 대학원 작곡과 졸업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 Konzertexamen(최고위과정)졸업

-한국작곡가회 명예회장

-전 백석대학교 음악대학원 원장

-현 백석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관현악곡 실내악곡 합창곡 예술가곡 동요 행사곡 각종 편곡 등 1000여곡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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